한실 성지(옛교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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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한실 교우촌은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의 백화산 서북부 중턱에 있던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 천주교 안동교구의 성지이다. 뒷산을 넘으면 충북 괴산군 연풍 성지와 연결되며,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신자들이 피난하여 마을을 이루었고 병인박해 때 15명의 순교자를 냈다.

역사

〔입지와 형성〕 문경시 자료에 따르면 한실은 좌편에 뇌정산(991m), 우편에 문경새재와 조령산(1107m)으로 둘러싸인 자연 요새의 특성을 갖추어 임진왜란 때 피난처가 되었고, 박해 시에는 은둔처가 되어 신유박해(1801년) 때부터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처음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후 상주 이안면 배모기에 살던 서광수(1715~1786)의 다섯째 아들 서유도의 가족이 한실 잣골로 피난 온 때부터라고 생각된다고 한다. 굿뉴스도 같은 취지로 서유도 가족의 피난으로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적는다. 문경시 자료는 1812년과 1813년 충청도 홍주와 연산의 황 바오로, 원 베드로 등이 공주에서 순교할 무렵 경상도에서도 사사로운 군란이 있어, 한실에 피난해 살던 서유도의 부인 전주 이씨가 순교했다고 전한다고 적는다.

〔칼레 신부의 사목〕 신자촌의 규모가 커지면서 1866년 병인박해 전 칼레(Calais) 신부는 한실을 중심으로 부근의 건학, 부럭, 여우목, 사실 신자촌과 백화산 너머 충북 연풍 등지의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며 전교하였다. 1865년 음력 12월 1일 건학(문경군 동로면 명전리) 신자촌에 성사를 주러 갔을 때 몇 주 전에 순교한 전 하비에르의 부인과 아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순교자를 위한 미사를 청했다고 한다. 굿뉴스는 칼레 신부를 경상북도의 사도로 소개하며, 병인박해가 본격화되자 칼레 신부가 한실을 중심으로 문경과 백화산을 넘어 연풍 등지로 쫓겨 다니며 고생했다고 적는다.

〔병인박해와 순교〕 문경시 자료에 따르면 병인박해 때 한실과 인근 신자촌의 많은 교우가 체포되었다. 문경에서 잡힌 이재현, 김레기, 김민기 등은 1867년 1월 4일 효수형을 받았고, 상주 아문에서는 각 교우촌에서 이송된 신자 23명과 한실에서 체포되어 온 서 베드로, 김 아우구스티노, 김 토마스, 김 안토니오, 김 베네딕도, 김 빈첸시오, 김 프란치스코, 김 요셉, 김 베드로, 모 막달레나 등 15명이 순교하였다. 굿뉴스는 한실 교우촌의 김예기·김인기 회장 형제가 여우목 공소에서 체포되어 온 성 이윤일 요한 회장과 함께 대구로 이송되어 1867년 1월 21일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적으며, 이후 한실 교우촌이 쇠퇴했다고 한다.

〔쇠퇴와 폐허〕 문경시 자료에 따르면 한실 신자촌은 점차 쇠퇴하였고, 1893년 동학난 때는 부근 신자들이 이곳으로 피난해 왔으며 얼마간 동학도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1910년 한일 합방 이후 사람들이 떠나 전부 폐허가 되었고, 대신 문경 가은읍의 먹방이와 도탄 등에 새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서유형 바오로의 유해 이장〕 안동교구는 교구 설정 40주년 순교자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 9월 상주시 함창읍 나한리 논두렁의 순교자 서유형 바오로 묘소를 발굴해 유해와 묘소 흙을 옹관에 담아 한실에 새로 조성한 무덤에 안치했다. 함께 순교한 형수 박 루치아의 유해는 확인되지 않아 가묘를 조성했다. 문경시 자료가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발굴은 교구 성지개발위원회(위원장 남정홍 신부)가 후손 10여 명과 사제가 모인 가운데 12시간가량 진행했으며, 팔꿈치 뼈와 다리뼈 일부 두 조각이 발굴되었고 유해를 감쌌던 흙을 한실에 이장하고 ‘순교자 서유형 바오로’ 묘비를 세웠다. 서유형은 경상도 첫 신자 서광수의 친척으로 문경시 산양면 평지리 일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1865년 10월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상주 진영으로 압송되었고, 가족들은 풀려났으나 서유형과 박 루치아는 1866년 겨울 상주 옥에서 순교했다(굿뉴스). 서유형의 묘소는 1988년 후손들의 노력으로 발견되어 관리되어 왔으나 묘소 터가 타인 소유의 땅이어서 이장이 불가피했다고 한다. 이는 교구가 5월 29일 봉화 우곡성지에 홍병주 등 순교자 13위 현양비를 세운 데 이은 두 번째 현양사업이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서태순 베드로: 경상도 첫 신자 서광수의 증손으로, 병인년 봄 한실로 피난했다가 그해 겨울 온 가족이 잡혀 문경 아문을 거쳐 상주 아문으로 이관되었고 음력 12월 18, 19일에 순교했다. 부인 김 데레사가 옥중에서 낳은 딸 서 마리아는 동정녀로 대구교구 설립 초창기에 공헌했다(문경시).
  • 김 아우구스티노: 청주 갈매골 출신으로 한실에 이사해 살다 병인박해 때 가족들과 체포되어 음력 12월 18, 19일 62세로 순교했다. 아들 김 토마와 종손들이 함께 순교했다(문경시).
  • 김 요셉·김 베드로: 사촌지간으로 한실에서 동정을 지키기로 뜻을 세웠으며, 김 요셉은 묵주 제작을 직업으로 삼았다. 함께 체포되어 순교했고 김 베드로의 모친 모 막달레나도 순교했다(문경시).
  • 김예기·김인기 형제: 한실 교우촌의 회장으로 1867년 1월 21일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굿뉴스).
  • 서유형 바오로: 상주 옥에서 순교했으며 유해의 흙이 한실에 안치되었다(굿뉴스).
  • 연풍 성지: 한실 뒷산을 넘으면 연결되는 충북 괴산군의 성지이다(문경시, 굿뉴스).

참고자료 및 출처

  1. 가톨릭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한실”. 교우촌 형성, 칼레 신부, 병인박해 순교, 김예기·김인기 형제, 서유형 유해 안치(2009년 9월).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351
  2. 문경시 문화관광, “한실 교우촌”(천주교성지). 입지, 형성 과정, 병인박해 15명 순교자 명단과 약전, 쇠퇴와 폐허, 서유형 유해 발굴 보도.
    https://www.gbmg.go.kr/tour/contents.do?mId=03030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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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5일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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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한실 성지(옛교우촌)",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5일 08:39. https://missamap.com/ko/kr/andong-hansil-seongji-yetgyouchon-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