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고한성당은 천주교 원주교구 태백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정선군 고한읍의 가톨릭 공동체를 맡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고한본당의 주보성인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밝히고 있으며, 관할 지역을 고한읍으로 기록한다. 탄광 개발과 함께 성장한 고한 지역의 생활권 한가운데에서 미사와 성사, 교리와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지는 본당이라는 점이 현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고한본당의 장소적 의미는 탄광촌의 기억과도 깊이 연결된다. 본당 자체의 역사 자료와 가톨릭 언론은 성당을 광산 노동자와 가족들이 살아가던 지역 안에서 형성된 신앙 공동체로 설명한다. 광업이 쇠퇴한 뒤 지역의 인구와 환경이 크게 달라졌지만, 성당은 고한읍의 가톨릭 신자들이 모이는 중심지로 남아 있다. 주보성인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신앙을 기리면서, 산업 변화와 지역 공동체의 굴곡을 함께 품어 온 본당이라는 점에서 고한성당의 지역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본당의 역사는 이곳의 가톨릭 공동체가 지역 주민의 삶과 떨어져 형성된 것이 아니라 탄광촌의 성장과 변화 속에서 함께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
역사와 유래
고한 지역의 가톨릭 공동체는 탄광 개발과 산간 이주가 이어지던 시기에 공소에서 시작되었다. 고한본당 자체 연혁에 따르면 1961년 정선본당의 페리 신부가 화전민들을 위해 공소를 마련했고, 1964년에는 당시 함백본당 관할이던 삼갈래에 공소 강당을 지었다. 이 건물은 수해로 유실되었고, 공동체는 1972년 8월 20일 고한7리에 다시 공소를 세워 신앙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광산 개발로 고한과 사북의 인구가 늘면서 공소 공동체도 본당 체제로 전환되었다. 1976년 10월 20일 고한과 사북 지역을 아우르는 고한·사북본당이 설정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출신 심병덕 윌리엄 슈미트 신부가 부임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도 이날을 고한본당의 설립일로 기록한다.
신자 증가와 지역 공동체의 필요 속에서 새 성전 건립이 추진되었다. 가톨릭신문은 전국 신자들의 후원과 본당 공동체의 노력으로 새 성당이 1987년 완공되었고, 1988년 7월 11일 지학순 주교 주례로 축성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본당은 성당을 신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열려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탄광촌의 열악한 형편이 가톨릭신문을 통해 알려진 뒤 전국 신자들의 후원이 성전 건립에 보태졌다는 사실도 이 건물이 지역 공동체와 더 넓은 교회의 연대로 세워졌음을 보여 준다.
같은 해 9월 사북본당이 분리되면서 기존 고한·사북본당은 고한본당으로 정리되었다. 이후 탄광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의 인구와 생활 조건은 크게 달라졌지만, 본당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를 주보로 모시고 고한읍의 신앙 공동체를 이어 왔다. 공소에서 광산촌 본당으로 성장한 과정은 이 지역 산업사와 가톨릭 공동체의 형성이 서로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고한 성당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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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0대
- 지상 2층 · 지하 1층
- 1987년 사용승인
- 연면적 605㎡
건축물대장 조회값 ·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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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원주교구 (Diocese of Wonju)
공식 홈페이지: http://www.w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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