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매교동 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제1대리구 팔달·장안지구에 속한 매교동 본당의 성당이다. 한국 천주교 주소록은 현재 주보성인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기록한다. 수원 도심의 오래된 생활권에 자리한 이 본당은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거행하고, 말씀과 교리교육, 신심과 봉사 활동을 이어 가는 지역 가톨릭 공동체의 중심이다. 성당은 단순한 예식 공간이 아니라 본당 공동체가 신앙의 여러 세대를 연결하는 생활의 자리로 기능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를 주보로 모신다는 점은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신앙과 이 본당의 정체성을 이어 주는 요소다. 신자들은 본당 안에서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세례와 혼인, 장례 같은 삶의 중요한 순간을 공동체와 함께하며, 어린이와 청소년의 신앙교육과 성인의 기도·봉사 활동도 이어 간다. 따라서 매교동 성당은 수원 시내의 한 종교 건축물이라기보다, 지역 안에서 성사와 기억, 공동체의 삶이 함께 축적되는 본당의 중심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와 유래
매교동 본당의 설립 논의는 1981년 1월 북수동 본당 사목협의회에서 구체화되었다. 당시 북수동 본당은 신자 증가와 넓은 관할 구역 때문에 분할 필요성이 커졌고, 같은 해 2월 교구 차원의 논의를 거쳐 4월 새 본당의 관할 구역이 공시되었다. 이어 성당 건립 준비위원회가 꾸려지고 6월 공사가 시작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8월 1일 정식 설립 통고를 기록하며, 현재 한국 천주교 주소록은 8월 21일을 설립일로 표시한다. 두 기록은 본당 출범 과정의 서로 다른 행정·현장 시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사제관 지하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단계적인 성당 건축을 계속했다. 1981년 11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친 공사가 이어졌고, 마침내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성당이 완성되어 1985년 6월 14일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제대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졌다. 이는 오늘날 본당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를 주보로 모시는 정체성과도 깊이 연결되는 역사적 요소다.
본당은 성장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낳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985년 병점 본당, 1987년 권선동 본당이 매교동에서 분리되었다. 1990년대에는 건물 노후화와 부속시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와 기금 조성에 나섰고, 1996년 추가 공사와 부지 확보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매교동 본당이 단순히 한 번 지어져 완성된 성당이 아니라, 수원 도심의 교세 변화에 따라 분가와 증축을 거듭하며 성장한 공동체였음을 보여 준다.
특히 설립 직후부터 성당 건축과 본당 분가가 연이어 나타났다는 점은 당시 수원 도심의 빠른 인구·교세 변화가 본당 구조에 직접 반영되었음을 보여 준다. 매교동의 연혁은 한 지역 공동체의 성장사인 동시에, 주변 지역에 새로운 본당이 생겨나는 과정의 한 축이기도 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매교동 성당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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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1대
- 지상 3층 · 지하 1층
- 1981년 사용승인
- 연면적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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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수원교구 (Diocese of Suw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su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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