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지동 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제1대리구 팔달·장안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를 주보로 모신다. 수원 동부 도심의 오랜 본당 가운데 하나로, 미사와 성사, 교리와 신심생활을 통해 지역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이어 주는 공동체다. 가까운 성빈센트병원과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공동체와도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을 맺어 왔으며, 이웃을 위한 봉사와 지역 복음화의 전통이 본당의 성격을 형성해 왔다.
지동본당은 특히 성소의 전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수원교구와 가톨릭신문 자료는 이 본당에서 여러 사제와 주교가 배출되었다는 점을 거듭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성당이라는 의미를 넘어, 가정과 본당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해 온 장소라는 점을 보여 준다. 성당 제대에 주보성인인 최경환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점도 본당의 신앙적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지역의 병원과 수도공동체, 본당이 가까이 자리하며 형성한 관계는 전례와 봉사가 분리되지 않는 지동본당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역사와 유래
1960~1970년대의 지동 일대는 당시 수원 시내에서 떨어진 지역으로 농민과 한국전쟁 뒤 고향을 떠난 이들이 함께 살던 곳이었다. 1967년 성빈센트병원이 문을 열면서 동수원 지역 전교의 필요성이 커졌고, 당시 교구장 윤공희 주교는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구에서 온 공 콘라드 신부에게 본당 설립 준비를 맡겼다. 공 신부는 대지를 마련하고 1968년 강당을 세웠으며, 교구는 1970년 6월 그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해 지동본당을 설립했다.
본당 설립 뒤 동수원 신시가지 조성과 교통망 확충으로 인구가 빠르게 늘었다. 설립 당시 약 670명이던 신자 수는 1980년 1,300명, 1983년 말 2,944명으로 증가했다. 신자 증가와 도시 도로계획으로 기존 성당을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 겹치자 공동체는 새 성당을 마련했고, 제대에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유해를 모셨다. 성전에는 이남규 루카 작가의 유리화도 설치되어 본당의 신앙과 예술적 기억을 함께 담았다.
2008년 성당 리모델링 과정에서 유리화의 배치는 달라졌지만 작품은 보존되었다. 본당은 외형적 성장과 함께 신자 재교육과 신심단체 활동을 강화하고, 인근 병원과 교정시설 등에서 봉사를 이어 가며 공동체의 내적 성숙에도 힘썼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많은 성소가 자라났고, 교구 자료와 최근 보도는 지동본당 출신 사제와 주교들이 꾸준히 배출되었음을 전한다.
2020년에는 설정 50주년을 맞아 기념미사를 봉헌하며 지난 반세기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았다. 당시 교구는 지동본당이 작은 공동체에서 출발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지역 복음화에 참여해 온 여정을 강조했다. 본당의 역사는 도시의 성장 속에서 신앙공동체가 자리를 넓혀 간 과정과, 전례·성소·봉사가 서로 연결되어 온 모습을 함께 보여 준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지동 성당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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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1대
- 지상 3층 · 지하 1층
- 1985년 사용승인
- 연면적 1,855㎡
건축물대장 조회값 ·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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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co Diary
교구
수원교구 (Diocese of Suw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su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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