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천리 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 제1대리구 처인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노동자의 모범이신 성 요셉’을 주보로 모신다. 용인 이동읍 천리 일대의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 교리와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는 본당이며, 오랜 교우촌의 기억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 신앙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주보 성 요셉의 노동과 성실의 영성은 농촌과 생활 터전이 맞닿아 온 지역 본당의 성격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천리본당은 본당 성당만이 아니라 주변의 신앙 유산을 돌보는 역할로도 의미가 크다. 수원교구 자료에 따르면 한덕골 순교사적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본당 역사 자료는 이윤일 성인의 묘와 인근 교우촌의 기억을 보존해 왔다고 전한다. 따라서 천리 성당은 현재의 본당생활과 박해시대 교우촌의 흔적이 이어지는 장소로, 방문자가 용인 지역 천주교 신앙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거점이 된다. 본당의 전례생활과 성지·사적지의 기억이 한 지역 안에서 이어진다는 점은, 천리 성당을 단순한 현대 본당이 아니라 박해시대부터 이어진 용인 지역 신앙사의 한 연결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역사와 유래
용인 천리 일대에는 박해시대부터 한덕골·먹방이·병목골·사리티 등 여러 교우촌이 형성되어 신앙의 명맥이 이어졌다. 한덕골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가족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 집안의 흔적이 전해지고, 먹방이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의 가족과 관련된 기억이 남아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천리 지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본당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896년 강도영 신부가 미리내에 앞서 천리에 성당을 세우려 했으나 지역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랫동안 가난 때문에 공소 건물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공동체는 한국전쟁 뒤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 미국 신자들이 보낸 구호물자와 지역의 도움을 성당 건축기금으로 모아 공사를 추진했고, 1957년 8월 성당 건물을 완공했다. 이어 1960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나, 1964년 두 번째 주임사제가 전임한 뒤 다시 용인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본당 지위를 잃은 뒤에도 공동체는 30여 년 동안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공소로 지낸 지 33년이 된 1997년 다시 사제가 부임하면서 본당 공동체가 재건되었고, 한국 천주교 주소록은 현재 본당의 설립 기준일을 1997년 2월 14일로 기록한다. 이후 새 성당을 마련해 2000년 봉헌했으며, 1950년대에 세운 옛 성당은 교리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본당은 재설립 뒤에도 주변의 신앙 유산을 지키는 일을 이어 왔다. 한덕골 순교사적지와 이윤일 성인의 묘를 돌보고 교우촌의 기억을 보존함으로써, 박해시대의 작은 신앙공동체와 오늘의 본당을 연결하고 있다. 천리본당의 역사는 공소와 본당을 오간 제도적 변화 속에서도 지역 신자들이 신앙을 끊지 않고 전승해 온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천리 성당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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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co Diary
교구
수원교구 (Diocese of Suw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su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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