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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수색 성당은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으로, 은평구 증산동과 수색 생활권의 신자 공동체를 돌보는 오랜 지역 교회이다. 뿌리는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현행 천주교 주소록은 1909년 설립된 본당으로 기록한다.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현재 성당은 증산서길에 자리하며 미사와 성사, 교리교육과 공동체 활동을 통해 서울 서북부의 신앙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수색 성당의 의미는 한 지역에 처음부터 같은 모습으로 존재했다기보다, 행주와 수색 일대의 선교 거점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동·재편되며 오늘의 본당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어려움을 지나 공동체가 다시 살아났고, 1950년대 수색으로 자리를 옮긴 뒤 현재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인구 증가에 따라 응암·가좌 등 주변 본당이 분리되면서 서울 서북부 교회 공동체의 확장에도 한 축을 담당했다. 그래서 수색 성당은 현재의 생활권 본당인 동시에 이 지역 가톨릭 역사의 연속성을 보여 주는 장소이다. 오랜 연혁 때문에 오늘의 성당만 보아서는 드러나지 않는 행주·수색 지역 선교사의 흔적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이 이 본당의 특징이다.

공식 출처

역사와 유래

수색 성당의 뿌리는 약현 본당의 공소와 한강 북서부 지역 선교 활동에서 시작한다. 교회 자료에 따르면 1909년 5월 이 공동체는 행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현행 천주교 주소록은 5월 26일을 설립일로 기록하지만 가톨릭대사전은 5월 21일을 제시해 정확한 날짜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본당의 시작은 ‘1909년 5월’로 정리하는 것이 안전하다. 당시의 중심지는 오늘날 수색 성당 자리와 달랐으며, 행주 일대 신자 공동체를 돌보는 선교 거점의 성격이 강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이 제약되면서 1942년경 본당 사목이 크게 위축되어 사실상 공소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해방 뒤인 1948년 다시 사제가 부임하며 공동체가 회복되었고, 1957년 수색동으로 본당 중심지를 옮긴 뒤 명칭도 수색 본당으로 바뀌었다. 이후 서울 서북부의 급격한 인구 증가에 대응해 1968년 응암 본당, 1971년 가좌 본당 등이 분리되면서 관할 구역은 재편되었다.

현재 증산동 성당 부지는 1970년 마련되었고, 새 성전 건축을 거쳐 1971년 8월 성전이 완공·봉헌되었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수색 성당은 전례와 교육, 지역 사목을 이어 왔다. 1909년 행주 지역에서 출발해 전쟁과 사회 변동을 지나 수색으로 이동하고, 다시 여러 본당을 분가시킨 역사는 서울 서북부의 도시화 과정과 가톨릭 공동체의 확장을 함께 보여 준다. 세부 설립일 기록에는 차이가 있지만, 20세기 초 선교 거점에서 오늘의 수색 본당으로 이어진 연속성은 분명하다. 특히 본당 중심지가 행주에서 수색으로 이동한 과정은 교회가 신자들의 생활권 변화에 맞추어 사목 거점을 옮긴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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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co Diary

교구

서울대교구 (Archdiocese of Seoul)

공식 홈페이지: https://ao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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