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성지
장소 소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서울 도심에 남아 있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성지다. 조선시대 서소문은 한양 도성의 남서쪽 출입문이었고, 문 밖 네거리는 교통과 상업이 집중되던 동시에 중죄인에 대한 형이 집행되던 장소였다. 천주교 박해가 이어지면서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이후 병인박해기에 많은 신앙인이 순교한 현장이 되었다. 한국 교회가 1984년 시성한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 2014년 시복한 124위 복자 가운데 27위가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확인되어, 한 장소에서 가장 많은 성인과 복자를 낸 순교성지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의 성지는 순교의 기억을 보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도·역사교육·문화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지하에는 순교자 현양과 관련한 전시, 정하상 바오로 기념 경당, 위로의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고, 역사박물관은 신앙의 자유와 인간 존엄, 서로 다른 이들의 공존을 생각하게 하는 문화 공간을 지향한다. 같은 자리에서 순교자들의 증언을 기억하고 미사와 기도를 바치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이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현재적 역할이다.
역사와 유래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서남쪽 관문인 서소문 밖에 형성된 교통의 요지이자 형장이었다. 도성 안에서 시신을 처리하는 것을 꺼리던 관행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의 공개성이 겹치면서 중죄인의 처형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 뒤에는 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이 처형되는 장소가 되었고,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이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여러 순교 사건이 이어졌다.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해 훗날 성인과 복자로 선포된 이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바쳤다.
근대 도시화 과정에서는 순교 터의 흔적이 크게 달라졌다. 서소문은 1914년 철거되었고, 철도 부설과 시장·도시시설 조성으로 옛 형장의 경관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이곳을 대표적인 순교 사적으로 기억해 왔고, 1984년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과 2014년 124위 순교자 시복을 거치며 서소문이 지닌 교회사적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특히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시복미사에 앞서 이곳을 참배한 일은 세계 교회 안에서도 이 성지의 의미를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다.
21세기에는 순교의 기억과 서울의 도시 역사를 함께 보여 주는 성지·박물관 조성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역사공원과 지하 역사박물관, 기도 공간이 결합된 현재의 형태가 마련되면서 단절되었던 옛 형장의 기억을 현대 도시 공간 안에서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2018년에는 서소문을 포함한 서울 순례길이 교황청의 공식 국제 순례지로 승인되었다. 오늘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조선 후기 박해의 현장, 근대 도시화로 지워진 장소의 기억, 그리고 현대 교회의 순례와 역사교육이 겹쳐지는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 성지의 역사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공간 소개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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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교구
서울대교구 (Archdiocese of Seoul)
공식 홈페이지: https://ao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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