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성당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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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언어
한국어
장소 소개
성수동 성당은 1966년 본당으로 승격된 서울대교구의 오랜 지역 본당으로, 그 뿌리는 1943년 세워진 뚝섬 공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동구 성수동의 산업화와 주거 변화 속에서 지역 신자들의 전례와 공동체 생활을 지켜 왔으며,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사목을 거쳐 한국인 사제 공동체로 이어진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오늘의 본당은 이 긴 지역 신앙의 연속선 위에 서 있다.
성수동 성당은 한국 가톨릭 꾸르실료 운동의 출발지로도 기억된다. 1967년 5월 이곳에서 국내 최초의 꾸르실료가 열렸고, 이후 이 운동이 전국 교회로 확산되었다. 또한 가정운동, 유치원과 노동청년을 위한 야학 등 시대의 필요에 응답한 여러 활동을 전개해 왔다. 성수동 성당의 의미는 한 지역의 미사 거점을 넘어, 평신도 신앙운동과 교육·사회 사목이 함께 성장한 서울 동부의 역사적 본당이라는 데 있다. 공소에서 본당으로, 다시 여러 사도직 운동의 발상지로 발전한 과정 때문에 성수동 성당은 서울의 산업화와 평신도 신앙운동의 변화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역사와 유래
성수동 지역 신앙 공동체의 시작은 1943년 10월 혜화동 본당 관할로 뚝섬 공소가 설립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록에는 두 세대, 다섯 명의 신자에서 공동체가 출발했다고 전한다. 1946년 10월에는 관할이 신당동 본당으로 옮겨졌고, 이후 지역의 인구 증가와 함께 독립적인 사목 거점의 필요성이 커졌다.
1964년 8월 서울대교구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에 이 지역 사목을 맡겼다. 준비를 거쳐 1966년 5월 8일 본당 설립 교령이 작성되었고, 6월 10일 성수동 본당으로 승격되어 축복식을 거행했다. 당시 신자 공동체는 181세대, 923명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외국 선교사들의 사목은 새 본당이 자리를 잡고 여러 평신도 활동을 시작하는 기반이 되었다.
1967년 5월 4일 성수동 성당에서는 21명이 참가한 한국 최초의 꾸르실료가 열렸다. 이 행사는 이후 한국 교회 전역으로 확산된 꾸르실료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고, 성수동은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발상지’로 기억된다. 1969년에는 크리스천 가정운동이 시작되었고, 1971년 수녀원과 유치원이 마련되었으며, 1973년에는 일하는 청소년을 위한 야학을 운영하는 등 당시 도시 산업지역의 현실에 맞춘 사목이 전개되었다.
지역 교회가 성장하면서 1977년에는 자양동 본당이 분리되어 나갔다. 뚝섬의 작은 공소에서 시작해 독립 본당이 되고, 평신도 신앙운동과 교육·사회 사목을 확산시킨 성수동 성당의 역사는 서울 동부 지역의 도시화와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목 변화가 함께 담긴 과정이다. 특히 1960~1970년대의 여러 활동은 당시 공업지역에서 살아가던 가정과 청년의 현실을 교회가 구체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흔적을 남긴다.
출처
- 서울대교구 본당 목록 - 가톨릭 주소록 · 서울대교구 굿뉴스
- 성수동 성당 본당 연혁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수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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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서울대교구 (Archdiocese of Seoul)
공식 홈페이지: https://ao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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