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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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석관동 성당은 서울대교구 중서울지역 제4 성북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예수 부활’을 주보로 모신다. 1978년 이문동과 장위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성북구 석관동과 인근 생활권 신자들의 미사와 성사, 신앙교육과 공동체 활동을 맡아 온 지역 본당이다. 본당 이름과 달리 특정 성인의 이름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보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이 공동체의 특징적인 신앙 표지다.
석관동 본당은 서울 북동부의 주거지역이 빠르게 팽창하던 시기에 새로 태어난 공동체다. 설립 당시 1천여 명 규모였던 신자 공동체가 1980년대에 급속히 커졌다는 교회사 기록은, 이 지역의 도시화와 본당 형성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 준다. 오늘의 석관동 성당은 그 성장의 역사를 품은 채 부활 신앙을 중심으로 전례와 교육, 세대별 공동체 생활을 이어 가며, 성북 지역의 여러 본당과 함께 지역 교회의 일상적인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모본당에서 분리된 뒤 자체 공동체를 세웠다는 역사 때문에, 석관동 성당은 성북구의 도시 성장과 지역 교회의 세분화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본당이기도 하다.
역사와 유래
석관동 본당은 1970년대 서울 북동부의 주거지역 팽창과 신자 증가 속에서 설립되었다. 한국 천주교 주소록과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78년 3월 15일 이문동 본당과 장위동 본당의 관할 지역을 나누어 석관동 본당이 설립되었다고 기록한다. 당시 신자는 약 1,320명이었다. 장위동 본당의 역사에서도 1970년대 후반 지역 인구가 늘면서 관할을 나누어 석관동 공동체가 독립한 사실이 확인되어, 새 본당 설립이 한 지역의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서울 외곽 주거지 확장에 대응한 사목 재편이었음을 보여 준다.
설립 뒤 공동체는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의 교세 자료에 따르면 1981년 3,581명, 1985년 5,920명, 1989년 8,737명으로 신자 수가 증가했다. 약 10년 사이 여러 배로 커진 변화는 석관동과 주변 지역의 도시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었는지를 반영한다. 새로운 공동체가 독립하자 자체적인 전례와 교육, 신심 단체와 본당 조직을 마련해야 했고, 본당은 이러한 급격한 성장 속에서 지역 신자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역할을 맡았다.
공개된 신뢰도 높은 자료에는 초기 성전 건축의 전체 연혁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으므로, 정확하지 않은 완공일이나 시설 변천을 덧붙이는 것은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다만 1978년 설립과 1980년대의 빠른 교세 성장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석관동 본당의 역사는 이문동·장위동 같은 기존 본당이 성장한 지역을 분할하고 새 본당을 세우면서 서울 북동부의 본당망이 촘촘해진 과정을 보여 주며, 오늘의 성당은 그 도시 성장기의 신앙 공동체가 이어 온 자리다. 특히 설립 초기의 규모와 1980년대 후반 교세를 비교하면, 새 본당을 만든 결정이 곧 이어진 지역 인구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선택이었음을 읽을 수 있다.
출처
- 한국 천주교 주소록 - 석관동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한국가톨릭대사전 - 장위동 본당 · 한국교회사연구소
- 한국가톨릭대사전 검색 - 석관동 본당 ·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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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Archdiocese of Seoul)
공식 홈페이지: https://aos.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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