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지) 성당 — 문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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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성당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본당이다. 서울 대목구에서 약현본당, 종현본당(현 명동대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설립일을 1927년 4월 29일로 기록한다. 이 일대의 옛 이름을 따 '백동(柏洞) 본당'이라고도 불린다. 1960년에 완공된 성당 건물은 2006년 3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제230호)로 지정되었다. 혜화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중서울지역 제4 종로지구에 속하는 본당으로,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다. 1927년 4월 29일 설립되었으며, 서울 대목구의 세 번째 본당으로 처음에는 백동(柏洞) 본당이라 불렀다. 주보는 성 베네딕도와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이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건물을 매입해 본당을 시작한 것이 특징이며, 제기동·길음동·돈암동·성북동 본당을 차례로 분할한 어머니 본당이다. 본당 설립 이전인 1866년경부터 혜화동 일대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1909년 성 베네딕도회가 백동에 수도원을 세우자 동소문 지역 신자들은 이 수도원의 주일미사에 참례하였고, 1918년경에는 동소문 밖 공소가 설정되었다. 1927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함경남도 덕원으로 옮겨 가자 서울 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수도원 건물을 매입하고 시잘레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여 본당을 설립하였다. 〔설립 이전〕 본당이 설립되기 전 동소문(東小門) 지역의 신자들은 1909년 백동(현 혜화동)에 정착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성당 주일 미사에 참례하거나, 1918년경 설정된 동소문 밖 공소의 공소 예절에 참여하였다. 1927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함경남도 덕원으로 이전하게 되자 서울 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코친차이나(월남 지역) 교구의 르 쿠브르 신부가 희사한 돈으로 백동의 수도원 건물을 매입하여 본당 설립을 추진하였다. 설립 시기는 본당 홈페이지 안에서도 두 가지로 기록된다. 본당 연혁은 1927년 4월 29일을 설립일로 적고, 본당 소개 글은 같은 해 10월 7일 뮈텔 대주교가 종현본당에서 혜화동 일대를 분리해 새 본당을 신설하였다고 적는다. 설립 당시 관할 구역은 남쪽으로 동대문 밖, 서쪽으로 광희문 밖, 북쪽으로 종로3가를 경계로 동소문 이북까지 이르렀고, 경기도 광주군과 양주군 등에 많은 공소가 있었다. 이후 제기동, 미아리, 돈암동, 성북동 본당이 차례로 이곳에서 분할되었으며 성북동 본당 분할은 1975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설립과 초기〕 1927년 4월 29일 시잘레(P. Chizallet)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면서 서울 대목구의 세 번째 본당인 백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베네딕도회가 아직 완전히 철수하지 못해 시잘레 신부는 서울 대목구 주교관에 머물다가 10월 18일에야 본당에 부임하였다. 따로 성당을 건립하지 않고 옛 수도원 성당을 사용하였으며, 사제관은 사우어 주교가 사용하던 거실을 활용하였다. 1929년 초에는 남자 신자 20여 명이 '혜화동 청년 친우회'를 창설하여 자선 사업과 전교 사업을 전개하였다. 1929년 제2대 주임 서기창 신부는 옛 수도원 성당을 백동으로 이전해 온 소신학교에 양보하고, 수도원의 목공소를 성당으로 개조하여 라리보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올렸으며 주보성인을 '성 베네딕도'로 정하였다. 1937년에는 오기선 신부가 혜화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58년 성당 신축 정초식을 거행하면서 '성녀 소화 데레사'를 주보성인에 더하였고, 1960년 새 성당이 완공되어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열렸다. 1998년에는 제4지구장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2대 주임 서기창 신부 재임기인 1929년에는 옛 수도원 성당을 백동으로 이전한 소신학교에 양보하고 수도원 부속 건물이던 목공소를 성당으로 개조하여, 9월 라리보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고 주보를 '성 베네딕도'로 정하였다. 1932년 9월 신자들이 모금한 성금으로 종을 마련하였고, 1929~1933년에는 안나회와 여자 성가대, 혜화동 소년회 등이 조직되었다. 3대 주임 오기선 신부 재임기인 1937년경에는 종현(현 명동) 본당과의 경계 조정으로 관할 구역이 종로 3가까지 확장되었고, '어린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우게 하여 민족의 얼을 심겠다'는 취지로 1937년 4월 혜화유치원을 설립·개원하였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파견되어 원아 교육과 전교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38년 3월 가톨릭 여자 청년회, 12월 성 프란치스코 재속 형제회가 발족하였다. 건축과 공간 〔본당 분할〕 4대 주임 생제 신부 재임기인 1942년 5월 첫 번째 자본당인 제기동 본당이 설립·분할되었다. 1943년 12월에는 성가 소비녀회를 설립하였고, 1945년 5월 두 번째 자본당인 미아리(현 길음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1946년 6월 제1회 성체 거동 행사를 거행하였고, 같은 해 12월 조창희 보좌 신부가 청년들을 위해 《청년 미사》를 편찬하였다. 1947년경에는 자문 기구인 '본당 유지 위원회'를 조직하고 신자 의사들의 친목 단체인 '가톨릭 의사회'를 발족하였다. 1948년 6월 생제 신부가 전임되면서 파리 외방전교회를 대신해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사목권을 인수하였다. 5대 주임 크레이그 신부는 부임 직후 교통사고로 미국에 귀국하였고, 1948년 8월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더피 신부도 195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직후 귀국하였다. 굿뉴스는 1960년에 지어진 혜화동성당을 1960년대 이후 건축되는 성당 건축의 모형으로서 근대적 건축미를 지닌 기념비적 건물로 평가한다. 성당 건립에 가톨릭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한국 교회미술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며,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여 '교회미술의 보물창고'라 불린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후 11월 7대 주임으로 정원진 신부가 부임하면서 한국인 신부들이 본당 사목을 맡기 시작하였다. 1952년 4월 전쟁으로 폐쇄되었던 혜화유치원을 다시 개원하고 본당 설립 25주년 은경축을 거행하였다. 성당이 낡고 협소해지자 1954년 3월 '신축 성당 건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1955년 4월 종로 본당이 설립되어 종로 3가 지역을 이관하였고, 10월에는 세 번째 자본당인 돈암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1956년 6월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도봉리 산 66의 1번지 임야를 매입해 본당 묘원으로 조성하였고, 1959년 2월에는 같은 면 방학리 산 65의 1번지를 매입해 묘원 사용 인가를 받았다. 1958년 6월 성당 신축 정초식을 거행하면서 주보 성인을 기존의 '성 베네딕도'와 더불어 '성녀 소화 데레사'로 정하였다. 〔성당 신축과 시설 확충〕 8대 주임 장금구 신부 재임기인 1960년 5월 성당과 사제관(1층)을 완공하여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61년 3월 《혜화동 성당 주보》 창간호를 발간하고, 10월 유치원 후관 원사(141평)를 신축하였다. 9대 주임 류수철 신부 재임기인 1965년 8월에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이동교리 산 14-1 야산에 묘원을 조성하였고, 같은 해 10월 유치원 본관(3층)을 신축하고 11월 수녀원(2층)을 완공하였으며 사제관도 2층으로 증축하였다. 이후 성당 공간은 단계적으로 더해졌다. 1977년 '103위 순교 복자 성화'가 제작되었고, 1979년 제대 뒤에 도자기 벽화가, 1980년과 1991년에 각각 성당 오른쪽과 왼쪽 유리창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었다. 1982년 지하철 4호선 공사 계획에 따라 대지 일부가 수용되어 일부 건물이 철거되었고, 1983년 교육관이 준공되었다. 1989년 지하 성당(현 소화 성당)이 완공되었으며, 1996년에는 소화 성당 안에 '게쎄마니의 기도' 설치미술이 완성되고 성당 앞 계단에 한국인 성모상과 요셉상이 안치되었다. 10대 주임 이계중 신부 재임기인 1970년 강당(2층)을 증축하고, 1972년 성모상 건립 및 조경 공사를 완료하였다. 11대 주임 박귀훈 신부 재임기인 1973년 8월 운영 위원회를 '사목 위원회'로 개편하였고, 1975년 5월 네 번째 자본당인 성북동 본당을 설립·분할하였다. 12대 주임 박희봉 신부 재임기인 1975년 12월 새 사제관(2층)의 축복식을 거행하고 '순교 복자 79위 시복 50주년 기념 사제관'으로 명명하였다. 1976년 11월 본당 설립 50주년 자축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1977년 1월 본당 역사를 담은 《백동 반세기》를 간행하였으며 7월에는 '103위 순교 복자 성화'를 제작하였다. 1979년 7월 성당 제대 후면 벽을 도자(陶磁)로 장식하고, 1980년 3월 성당 오른쪽 유리창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였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13대 주임 이기명 신부 재임기인 1980년 7월 13일 본당 주보 《혜화》 1000호를 발간하고, 1001호부터는 서울대교구 홍보국이 발행하는 《서울 주보》로 통합 발행하였다. 같은 해 8월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성하였고, 1981년 3월 수녀원(3층)을 준공하였으며 9월 성모회가 복자 김대건 신부상을 기증하였다. 1982년 5월 성모 동산을 새로 조성하였다. 같은 해 서울시의 지하철 4호선 공사 계획으로 본당 대지 일부가 수용되어 성서·성물 보급소와 숙직실 등이 철거되자 교육관을 신축하기로 하였고, 동성중고등학교에서 필요한 대지 일부를 확보하여 9월 기공식을 거쳐 1983년 5월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준공 감사 미사를 봉헌하였다. 본당 홈페이지는 초기 신자들이 혜화문(동소문)을 통해 성당을 자주 드나들었으므로 이 성문의 교회사적 가치도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굿뉴스는 대학로와 맞닿은 혜화동성당이 젊은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소개한다. 14대 주임 이상훈 신부 재임기인 1985년 10월 동성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 대회와 백일장을 겸한 '백동제'를, 청년 연합회 주최로 제1회 '백동 문화제'를 개최하였다. 1987년 본당 설립 60주년을 기념해 6월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의 축성식과 기념 미사를 10월에 거행하였고 《백동 60년사》를 발간하였다. 1989년 11월 소규모 전례 행사와 교리 강좌를 위한 지하 성당(현 소화 성당)을 완공하였고, 1991년 성당 왼쪽 유리창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였다. 관련 장소와 인물 15대 주임 박순재 신부 재임기인 1991년 10월 성모 동산의 성모상을 성당 계단 왼쪽으로 옮기고 요셉상을 오른쪽에 안치하였으며, 도로변 담장 안쪽에 십자가의 길을, 오른쪽 성당 벽에 로사리오의 길을 조성하였다. 1992년 소공동체 운동 활성화를 위해 본당 구역을 4개 지구 8개 구역으로 개편하였다. 1993년 3월 청동 대형 십자가를 제작해 종탑에 설치하였고, 5월 지하 성당을 보수한 뒤 '소화 성당'이라 명명하였다. 9월 제1회 '본당 공동체의 날'을 개최하였고, 1994년 10월 강당을 2층에서 4층으로 증축해 '백동관'으로 명명하였으며 새 성체 조배실을 마련하였다. 1995년 5월에는 만남의 장소 '샘터'를 조성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16대 주임 염수의 신부 재임기인 1996년 4월 소화 성당 성체 안치소에 '게쎄마니의 기도'라는 설치 미술 작품을 완성하였고, 11월 성당 앞 계단에 한국인 성모상과 요셉상을 제작·안치하였으며, 12월 본당 소장 성미술을 도록으로 엮은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를 제작하였다. 1997년 3월 정문 오른쪽에 성물 보급소(2층)를 완공하여 '분도의 집'으로 명명하였고, 9월 《백동 70년사》를 간행하였으며 10월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행사를 열었다. 17대 주임 나원균 신부 재임기인 1999년 6월 혜화유치원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였고, 2000년 10월 성당 대보수 공사를 시행하였다. 18대 주임 김철호 신부 재임기인 2004년 12월 본당 소식지 《백동》을 창간하였다. • 명동대성당(종현본당)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기재된 교세는 1927년 약 800명, 1937년 2,844명, 1955년 3,640명, 1970년 6,120명, 1990년 7,245명, 2000년 6,428명, 2005년 5,681명이다. 관할 구역은 혜화동, 명륜동 1~4가, 동숭동, 동소문동 1~2가, 연건동, 이화동, 삼선동 1~2가, 성북동 1가 일부이다. 역대 주임은 초대 시잘레(池士元) 베드로(1927.4~1929.5), 2대 서기창 프란치스코(1929.5~1936.5), 3대 오기선 요셉(1936.5~1939.7), 4대 생제(成載德) 베드로(1939.7~1948.6), 5대 크레이그(奇厚根) 후고(1948.6~8), 6대 더피 파트리치오(1948.8~1950.6), 7대 정원진 루가(1950.11~1959.5), 8대 장금구 그리소스토모(1959.5~1962.9), 9대 류수철 도미니코(1962.9~1968.6), 10대 이계중 세례자 요한(1968.6~1973.5), 11대 박귀훈 요한(1973.5~1975.5), 12대 박희봉 이시도로(1975.5~1980.5), 13대 이기명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0.5~1985.8), 14대 이상훈 리노(1985.8~1991.8), 15대 박순재 라파엘(1991.8~1995.9), 16대 염수의 요셉(1995.9~1998.9), 17대 나원균 바오로(1998.9~2003.9), 18대 김철호 바오로(2003.9~현재)이다. • 약현성당 건축과 공간 • 성북동성당 설립 당시에는 옛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성당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1929년 수도원 부속 목공소를 성당으로 개조하여 봉헌하였다. 1958년 6월 신축 정초식을 거쳐 1960년 5월 성당과 사제관(1층)을 완공해 봉헌하였다. 1979년 제대 후면 벽을 도자로 장식하고 1980년과 1991년에 성당 오른쪽·왼쪽 유리창을 각각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였다. 1989년 완공된 지하 성당은 1993년 '소화 성당'으로 명명되었고, 강당은 1994년 4층으로 증축되어 '백동관'이라 불린다. 참고자료 및 출처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 천주교 혜화동교회, 본당안내와 본당역사. 본당 설립 경위와 설립일의 두 기록, 초기 관할 구역, 분할된 본당, 연도별 연혁, 혜화문의 의미를 확인하였다. http://www.hyehwa.org/church/church.asp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 따르면 본당의 수녀회는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이다. • 굿뉴스(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지와사적지 '혜화동 성당'. 본당 설립 과정, 1960년 성당 완공, 성당 미술 작품, 2006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30호 지정을 확인하였다. 관련 장소와 인물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867 • 제기동 본당(1942년 5월)·미아리(현 길음동) 본당(1945년 5월)·돈암동 본당(1955년 10월)·성북동 본당(1975년 5월): 혜화동 본당에서 분할된 자본당들이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혜화동(지)'. 서울대교구 제4 종로지구 소속과 설립일 1927년 4월 29일을 확인하였다.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245&gubn=4&gubn2=all&gyogu=201000011 • 종로 본당: 1955년 4월 설립되어 혜화동 본당의 종로 3가 지역을 이관받았다. •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1909년 백동에 정착해 1927년 덕원으로 이전하였으며, 그 건물을 본당이 매입하였다. • 메리놀 외방전교회: 1948년 6월 파리 외방전교회를 대신해 본당 사목권을 인수한 선교회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혜화동 본당(종로)」. 1927년 4월 29일 설립, 주보, 관할 구역, 설립 경위와 성당 신축·증축, 자본당 분할, 역대 주임과 교세를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929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혜화동(지)」. 소속 지구(중서울지역 제4 종로지구), 설립일 1927.04.29, 주보,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를 확인하였다.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245&gubn=4&gubn2=all&gyogu=20100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