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양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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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1. 본당의 성격과 소속
    2. 관할 지역
    3. ‘녹양’이라는 지명의 배경
    4. 주보: 성모 성심
    5. 현재의 본당
  2. 역사
    1. 설립 이전의 배경
    2. 1992년: 본당 설정과 첫 미사
    3. 1993~1995년: 새 성전 건립
    4. 초기 관할 확장과 공소 운영
    5. 2000~2002년: 양주 백석 공동체의 성장과 분가
    6. 2004년: 의정부교구 소속 본당으로 전환
    7. 2007~2011년: 시설 정비와 지역 변화
    8. 2012년: 이주사목 특성화 본당 지정
    9. 2015~2017년: 사회사목과 북한이탈주민 사목
    10. 2017년 본당 설립 25주년
    11. 2020~2022년: 코로나19와 전례 방식의 변화
    12. 2025년 이후
  3. 건축과 공간
    1. 성전 건축의 시작
    2. 외관의 특징
    3. 대성당 내부
    4. 임시성전의 기억
    5. 소성당·강당과 부속 공간의 변화
    6. 유지보수와 현대화
    7. 건축사적 가치에 대한 주의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1. 성모 성심을 주보로 한 본당
    2. 지역 본당이면서 이주민 사목의 거점
    3. 북한이탈주민과 민족화해 사목
    4. 사제 성소를 배출한 공동체
    5. 순례지인가, 생활 본당인가
    6. 미사와 방문 시간
    7. 교통과 접근성
    8. 방문 시 눈여겨볼 지점
  5. 관련 장소와 인물
    1. 의정부1동성당
    2. 주교좌 의정부성당
    3. 덕정성당
    4. 양주 백석성당
    5. 광적공소와 광적성당
    6.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7. 김옥균 주교
    8. 강우일 베드로 주교
    9. 최창무 안드레아 주교
    10. 임승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1. 성세현 바르톨로메오 신부
    12. 본당 출신 사제와 수도성소
    13. 안점순 마리아
  6. 참고자료 및 출처
    1. 자료 선택 원칙
    2. 주요 출처
    3. 검증 시 특히 주의할 항목

개요

본당의 성격과 소속

녹양동성당은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에 자리한 천주교 본당으로, 현재 천주교 의정부교구 제3지구에 속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은 녹양동성당을 의정부교구 소속의 정식 본당으로 분류하며, 설립일을 1992년 9월 24일, 주보를 성모 성심, 대표 주소를 경기도 의정부시 비우로 99로 기록하고 있다. 2026년 확인 기준 주소록에 등재된 신자 수는 2,133명이며 공소는 없다. 신자 수는 해마다 변동될 수 있으므로 역사적 수치가 아니라 해당 시점의 행정 통계로 이해해야 한다.

본당 자체 소개에 따르면 녹양동성당은 1992년 의정부1동성당(당시 의정부4동성당)과 주교좌 의정부성당(당시 의정부2동성당)의 관할 일부를 나누어 설립되었다. 본당 홈페이지는 분당 당시 의정부1동성당에서 674세대 2,042명, 주교좌 의정부성당에서 94세대 219명이 녹양동성당 쪽으로 편입되었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녹양동성당은 처음부터 단순한 소규모 공소가 아니라, 의정부 북부와 양주 남부 경계지역의 상당한 신자 공동체를 독립 본당으로 조직하기 위해 설정된 본당이었다고 볼 수 있다.

관할 지역

본당 공식 소개 페이지는 관할 지역을 녹양동 전역, 가능1동 일부, 양주시 양주1동 일부로 설명하며, 양주 쪽 세부 지역으로 어둔동·남방동·유양동·산북동을 적고 있다. 다만 이 표기는 과거 행정구역 명칭을 함께 사용하는 본당 소개 문구이므로 실제 교적 관할의 세부 경계는 전입·분가·행정구역 조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주소가 현재 어느 본당 관할인지 확인해야 할 경우에는 본당 사무실 또는 의정부교구의 최신 관할 자료를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녹양동은 의정부시의 최북단에 자리하고 북쪽과 서쪽으로 양주시와 맞닿는다. 의정부시 자료에 따르면 녹양동은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의 성격이 함께 나타나는 곳이며, 2000년대 이후 대단위 택지개발과 2006년 수도권 전철 1호선 녹양역 개통을 거치며 주거지가 빠르게 확대되었다. 본당 연혁에도 2008년 관할 지역의 휴먼시아 아파트 1,885세대 입주가 별도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어, 본당 공동체가 지역 도시화와 주거 인구 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아 왔음을 보여 준다.

‘녹양’이라는 지명의 배경

‘녹양동(綠楊洞)’이라는 지명은 본당명과 직접 연결되는 지역사적 요소다. 의정부시는 조선시대 이 일대에 군마를 기르던 녹양평(綠楊坪)이라는 목장이 있었고, 이 이름에서 녹양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녹양평이 동서 7리, 남북 12리 규모였으며 중군과 좌군의 말을 방목하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의 본당이 조선시대 신앙 유적 위에 세워졌다는 뜻은 아니지만, 본당명은 지역의 오래된 지명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주보: 성모 성심

녹양동성당의 주보는 본당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 모두 성모 성심으로 기록한다. 전례상으로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과 연결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 기념일이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과 연결되어 발전했고, 비오 12세 교황이 1942년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한 뒤 전 교회로 확대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지낸다고 설명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성모 공경은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971항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그리스도교 예배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지지만, 성부·성자·성령께 드리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명확히 구분한다. 따라서 녹양동성당의 ‘성모 성심’이라는 주보는 성모 마리아 자체를 신격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리아의 믿음과 사랑,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에 대한 참여와 모성적 마음을 묵상하는 가톨릭 신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현재의 본당

2025년 2월 18일 성세현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제11대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본당 연혁은 같은 날 김영욱 블라시오 신부가 의정부 엑소더스 위원장으로 부임한 사실도 기록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 역시 성세현 바르톨로메오 신부를 녹양동성당 주임신부로 등재하고 있다.

2026년 본당 홈페이지의 미사 안내에는 주일 06:00, 09:00, 11:00 교중미사, 14:00 베트남어 미사, 16:00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셋째 주), 17:00 어린이·청소년·청년 미사가 안내되어 있다. 토요일에는 첫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와 셋째 토요일 민족화해일치미사도 편성되어 있다. 이는 녹양동성당이 일반 지역 본당의 기능과 함께 이주민 사목, 민족화해·북한이탈주민 사목, 성모 신심이라는 복수의 사목적 성격을 현재까지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자료다.

단, 본당 홈페이지의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 항목에는 ‘스페인어’라는 표기가 함께 나타난다. 동티모르의 공용어 체계와 맞지 않는 표기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방문자가 특정 언어 미사를 목적으로 찾는다면 언어와 일정은 본당에 사전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역사

설립 이전의 배경

녹양동성당의 역사는 의정부·양주 지역 천주교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기존 본당의 관할을 나누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1992년 이전 녹양동 일대의 신자들은 주로 현재의 의정부1동성당과 주교좌 의정부성당 관할에 속해 있었다. 의정부1동성당 연혁은 1992년 10월 8일 녹양동성당 분가로 674세대 2,042명이 이동했다고 기록한다. 녹양동성당 자체 소개와 연혁은 본당 설정일을 9월 24일로 두고 9월 25일 초대 주임신부 부임을 기록하므로, 9월 말 본당이 설정된 뒤 10월 초 행정적 분가와 교적 정리가 이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1992년: 본당 설정과 첫 미사

녹양동성당의 공식 설립일은 1992년 9월 24일이다. 다음 날인 9월 25일 임승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별도의 완성된 성전이 없는 상태에서 공동체가 먼저 출범했으며, 1992년 10월 12일 사제관 지하실에서 본당의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

같은 해 12월 20일에는 초대 사목협의회가 구성되었다. 초대 회장은 고 김홍두 프란치스코로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는 본당이라는 교회 행정 단위는 이미 성립했지만, 독립된 성전과 부속 시설은 아직 갖추지 못한 ‘공동체 선행, 건축 후행’의 단계였다.

1993~1995년: 새 성전 건립

본당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초기 과제는 새 성전 건립이었다. 1993년 3월 25일 성전 건축을 위한 모금 협조 편지가 다른 본당들에 발송되었고, 4월 18일 김옥균 주교의 집전으로 성전 기공 미사가 봉헌되었다. 본당 연혁은 설계자를 ‘이 우 건축’, 시공사를 요산종합건설로 기록한다. 공개된 연혁만으로는 설계사무소의 정확한 법인명, 담당 건축가 개인명, 연면적·구조 방식 등 세부 건축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임의로 보완해서는 안 된다.

건축 과정에서 기존 사제관을 철거한 뒤 1993년 5월 27일에는 비닐하우스 형태의 가설 성당을 마련했다. 이는 공사 기간에도 전례와 공동체 활동을 중단하지 않기 위한 임시 공간이었다. 7월 27일에는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분원 수녀들이 파견되었고, 11월 16일 성전 상량식이 열렸다. 12월 30일에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건축 현장을 방문했다.

1994년에도 건축은 이어졌다. 6월 6일 전 신자 첫 성지순례를 배론성지로 다녀왔고, 9월 3일에는 최창무 안드레아 주교의 집전으로 본당 첫 견진성사가 거행되었다. 9월 10일에는 의정부 공설운동장에서 성전 완공을 위한 바자회 미사와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모 본당인 의정부성당과 의정부1동성당도 함께 참여했고 강우일 베드로 주교가 미사를 집전했다. 이 기록은 새 본당의 성전이 녹양동 신자들만의 힘으로 단절되어 건립된 것이 아니라, 주변 본당과 교구 공동체의 지원 속에서 완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1995년 10월 8일 오전 11시에는 녹양동성당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집전자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었다. 본당 연혁은 성전 건축을 위해 21개 본당을 방문해 건축헌금을 모금했다고 함께 기록한다. 따라서 1992년은 ‘본당 설립’, 1993년은 ‘현 성전 착공’, 1995년 10월 8일은 ‘성전 봉헌’의 시점으로 구분해 기록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세 날짜를 하나의 ‘성당 설립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초기 관할 확장과 공소 운영

녹양동성당은 설립 초기 현재의 녹양동 일대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양주 지역의 여러 공동체까지 관할했다. 덕정성당 공식 연혁에 따르면 덕정 지역 공동체는 1992년 9월 24일 녹양동성당 관할 공소로 이관되었다. 녹양동성당 연혁에는 1995년 2월 25일 덕정공소 축성식이 기록되어 있다.

1997년에는 덕정공소가 다시 독립 본당으로 승격했다. 다만 날짜는 자료별로 조금 다르다. 녹양동성당 연혁은 1997년 10월 16일 덕정공소의 본당 승격과 신자 1,010명의 전출을 기록하는 반면, 덕정성당 자체 연혁은 9월 26일 분가 승인, 10월 12일 본당 재승격을 기록한다. 따라서 ‘1997년 가을 덕정공소가 독립 본당으로 재승격했다’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세부 행정 절차의 기준일을 하나로 단정하려면 당시 교구 공문을 추가 확인해야 한다.

1999년 5월 16일에는 녹양동성당 소속 광적공소의 첫 미사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양주시 광적면에는 의정부교구 광적성당이 존재한다. 다만 공개된 현 광적성당 소개 페이지에는 설립 초기 연혁이 충분히 게시되어 있지 않아, 1999년 녹양동성당 소속 광적공소와 현 광적성당의 승격·관할 이관 과정을 본 문서에서 세부 날짜까지 단정하지 않는다.

2000~2002년: 양주 백석 공동체의 성장과 분가

2000년 3월 28일에는 양주 백석 성전 건립을 위해 당시 백석면 오산리에 1,512평의 부지를 구입했다. 2001년 10월 26일 백석공소 성전 공사를 시작했고, 2002년 1월 13일 신축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녹양동성당 연혁은 2002년 9월 18일 백석공소 준공, 10월 1일 본당 승격과 신자 1,012명의 전출을 기록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현재의 양주 백석성당 공식 설립일을 2002년 9월 19일로 기록한다. 따라서 녹양동성당 연혁의 10월 1일은 실제 공동체 분가·교적 전출 또는 운영상 전환 시점일 가능성이 있다. 위키형 기록에서는 ‘양주 백석성당은 2002년 9월 19일 설립되었고, 녹양동성당 연혁에는 같은 해 10월 1일 백석공소의 본당 승격과 1,012명 전출이 기록되어 있다’고 두 자료를 병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 과정은 녹양동성당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의정부와 양주 경계의 넓은 지역을 담당한 ‘모본당’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덕정처럼 녹양동성당보다 더 오래된 전신 역사를 가진 공동체도 있으므로, 녹양동성당이 주변 모든 본당의 기원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2004년: 의정부교구 소속 본당으로 전환

녹양동성당은 설립 당시 서울대교구 소속이었다. 2004년 6월 24일 의정부교구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설정되면서 녹양동성당도 새 의정부교구 소속이 되었다. 덕정성당 공식 연혁 역시 같은 날짜에 교황령에 따라 서울대교구의 경기 동·서·북부 일부가 통합되어 의정부교구가 설정되었다고 기록한다.

이 변화 이후 녹양동성당은 의정부교구의 지역 본당 체계 안에서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제3지구 본당으로 분류된다.

2007~2011년: 시설 정비와 지역 변화

2007년 4월 본당 일부 리모델링이 이루어졌고, 같은 달 성가소비녀회 분원이 파견되었다. 2008년에는 관할 지역 휴먼시아 아파트 1,885세대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의정부시도 녹양동이 대단위 택지개발과 녹양역 개통 이후 빠르게 도시 주거지역으로 변화했다고 설명한다. 이 두 자료를 함께 보면, 본당은 1990년대의 의정부·양주 경계형 공동체에서 2000년대 후반 신흥 공동주택 주민을 포함하는 도시형 본당으로 성격이 확장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010년 12월에는 승강기 설치 공사가 시작되었고 2011년 2월 6일 축복식과 함께 사용이 시작되었다. 이는 1990년대 초 지어진 건물을 장기간 사용하는 과정에서 접근성과 편의 기능을 보완한 대표 사례다.

2012년: 이주사목 특성화 본당 지정

2012년 8월 23일 녹양동성당은 의정부교구로부터 ‘이주사목 특성화 본당’으로 지정되었다. 본당 연혁은 근거 문서로 ‘교구장 12-008’ 공문 번호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 지정은 녹양동성당의 현대적 정체성을 설명할 때 중요한 사건이다.

현재 본당 미사표에 주일 베트남어 미사와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가 별도로 편성되어 있는 점은 이주민 공동체 사목이 단순한 과거 사업으로만 남아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다만 특성화 본당 지정의 현재 행정적 효력이 동일하게 유지되는지 여부는 최신 교구 공문을 추가 확인해야 하므로, ‘현재도 공식적으로 동일한 지정 상태다’라고 단정하는 것보다 ‘2012년 교구가 이주사목 특성화 본당으로 지정했으며, 현재도 외국어·이주민 공동체 미사가 운영되고 있다’고 서술하는 편이 정확하다.

2015~2017년: 사회사목과 북한이탈주민 사목

2015년 본당 신자 안점순 마리아가 재산 전액을 기부했고, 본당은 같은 해 무의탁 노인의 공동생활을 위한 주택을 구입했다. 이후 본당이 직접 운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2015년 11월 해당 주택을 교구 사회사목국에 양도했다. 이는 본당의 지역사회 돌봄과 교구 사회사목이 연결된 사례다.

2017년 2월 2일에는 녹양동성당이 ‘북한 이탈 주민 특성화 본당’으로 지정되었다. 본당 연혁은 근거를 ‘교구장 17-001’ 공문으로 명시한다. 현재 본당에서는 셋째 토요일에 민족화해일치미사가 봉헌되고 있으며, 본당 홈페이지에는 민족화해와 일치를 주제로 한 영상 자료도 남아 있다. 2012년의 이주사목 지정과 2017년의 북한이탈주민 특성화 지정은 녹양동성당이 지역 본당의 울타리를 넘어 이주민·북한이탈주민·민족화해 문제를 사목의 한 축으로 다뤄 왔음을 보여 준다.

2017년 본당 설립 25주년

2017년에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8월 26일 25주년 기념음악회가 대성당에서 열렸고, 10월 15일 양주별산대 공연장에서 461명이 참여한 야외미사가 봉헌되었다. 12월 25일에는 묵주기도 997,110단 봉헌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모 성심을 주보로 둔 본당의 신심적 성격과 공동체 결속을 보여 주는 상징적 기록이다.

2020~2022년: 코로나19와 전례 방식의 변화

코로나19 시기 녹양동성당 역시 대면 전례 제한을 겪었다. 2021년에는 유튜브 실시간 방송미사를 병행했고,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에서는 비대면 방송미사로 전환했다. 같은 해 대성당에는 LED 전광판 시스템과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 시설 공사가 아니라 감염병 시기 전례 참여 방식을 보완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의 흔적이다.

2022년 2월 27일에는 본당 1층 공간에서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가 월 1회 시작되었다. 현재 미사표에는 셋째 주 주일 16:00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가 안내되어 있어 이 공동체 전례가 이후에도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이후

2025년 2월 18일 제10대 최재영 세례자요한 신부가 이임하고 제11대 성세현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부임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최신 주소록에도 성세현 신부가 주임신부로 확인된다.

2026년 현재 녹양동성당은 1990년대에 세워진 성전을 계속 사용하면서 지역 본당, 이주민 공동체, 성모 신심, 민족화해 사목이 함께 존재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본당 역사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1992년 의정부 북부·양주 남부 신자 공동체의 분가로 출발해 1990년대에는 주변 공소와 신설 본당의 모체 역할을 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도시화와 교구 분리를 거쳐 이주민·북한이탈주민 사목까지 역할을 확장한 본당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건축과 공간

성전 건축의 시작

현재 성전의 건축은 본당 설립 다음 해인 1993년에 본격화되었다. 1993년 4월 18일 김옥균 주교가 기공 미사를 집전했고, 본당 연혁은 설계를 ‘이 우 건축’, 시공을 요산종합건설이 맡았다고 기록한다. 1993년 11월 16일 상량식, 같은 해 12월 30일 김수환 추기경의 공사 현장 방문이 이어졌으며, 1995년 10월 8일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성전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공개된 공식 자료에서는 성전의 연면적, 구조 형식, 정확한 준공허가일, 건축가 개인 이름,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와 같은 세부 정보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항목은 추후 건축물대장, 설계도면, 본당 25주년사·30주년사, 당시 주보 또는 교구 기록을 확보하기 전에는 추정해 적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관의 특징

공개 사진에서 확인되는 성전 외관은 붉고 짙은 갈색 계열의 벽돌이 주재료로 보이며, 정면에는 큰 아치형 개구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배치되고, 상부에는 십자가를 얹은 뾰족한 탑 형태가 강조된다. 성전부와 사목·부속 공간으로 보이는 여러 동이 한 덩어리처럼 연결되어 있어, 독립된 예배당만 세운 형태보다는 본당의 전례·교육·행정을 함께 수용하는 복합 본당 건축의 성격을 보인다.

다만 이러한 외형만으로 건물을 ‘고딕 성당’, ‘네오고딕 성당’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뾰족한 탑과 아치, 수직성을 강조하는 교회 건축 어휘가 사용된 것은 사진으로 확인되지만, 본당 또는 설계자의 공식 설명에서 특정 건축양식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키 수준의 문서라면 ‘고딕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보인다’ 정도의 관찰‘공식적으로 고딕 양식으로 확인되었다’는 사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대성당 내부

본당 공식 행사사진에서 확인되는 대성당 내부는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장의자가 좌우에 배치되고, 전면 제대 뒤쪽 벽은 외부와 마찬가지로 벽돌 질감이 드러난다. 제대 중심축에는 십자고상이 배치되고, 그 뒤에는 원형 또는 방사형의 장식 요소가 있으며 좌우에는 세로로 긴 색유리 창이 설치되어 있다.

이 구성은 회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대와 십자고상으로 집중되도록 한다. 대성당은 본당의 주일 교중미사, 견진성사, 사제 첫 미사, 기념음악회 등 주요 전례와 공동체 행사의 중심 공간으로 사용되어 왔다.

임시성전의 기억

현재의 성전이 완성되기 전 녹양동 공동체는 사제관 지하실비닐하우스 가설 성당을 사용했다. 1992년 10월 첫 미사는 사제관 지하실에서 봉헌되었고, 1993년 5월 성전 건축을 위해 기존 사제관을 철거하면서 비닐하우스 형태의 가설 성당이 마련되었다. 이 과정은 오늘의 성전 건물이 본당 설립과 동시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임시 공간을 거쳐 직접 성전 건립을 추진한 결과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소성당·강당과 부속 공간의 변화

본당 건물은 1995년 봉헌 이후 그대로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사목 필요에 따라 계속 변경되어 왔다. 2007년에는 본당 일부 리모델링이 있었고, 2009년에는 영안실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2010~2011년에는 승강기를 설치했고, 2012년에는 1층 소성당을 다목적실 또는 강당으로 변경했다.

2013년에는 기존 만남의 방을 활용한 북카페 ‘엠마오’가 문을 열었고, 2022년에는 북카페를 철거한 뒤 로비 카페와 탕비실을 다시 정비했다. 우리농 매장도 같은 해 기존 성물방 위치로 이전했다. 이처럼 녹양동성당의 공간은 전례만이 아니라 교육, 친교, 복지, 공동체 회합을 수용하도록 계속 조정되어 왔다.

유지보수와 현대화

2011년에는 외벽 발수공사와 창틀 실리콘 공사가 이루어졌고, 2012년에는 대성당·사무실·카페의 조명이 LED로 교체되었다. 2016년에는 기존 성당 대문을 철거하고 자동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으며, 2017년에는 성당 외벽 방수 공사를 진행했다. 2021년에는 대성당에 LED 전광판과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했고, 2022년에는 1층 소성당·제의실·로비의 조명을 추가로 LED화했다.

이 기록들은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하다. 녹양동성당은 ‘1995년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건축물’이 아니라, 30년 넘게 실제 신앙 공동체가 사용하면서 접근성·방수·조명·영상·친교 공간을 계속 보완한 생활하는 성전이다. 따라서 방문자가 현재 보는 모습 가운데 일부는 1990년대 원형이 아니라 이후 개보수의 결과다.

건축사적 가치에 대한 주의

녹양동성당은 현재 확인되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이나 교구 지정 성지·사적지로 소개되는 장소가 아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에서도 일반 ‘본당’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문화유산적 가치를 설명할 때는 명동대성당이나 약현성당처럼 공인된 근대건축 문화유산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녹양동성당의 건축적 의미는 오히려 1990년대 수도권 북부 신도시·도시 확장기에 성장한 본당 공동체가 직접 성전을 건립하고, 이후 사목 환경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개조·확장해 온 사례라는 데 있다. 건축 자체의 예술사적 지위를 과장하기보다 본당사와 지역 변화 속에서 공간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성모 성심을 주보로 한 본당

녹양동성당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볼 신앙적 표지는 ‘성모 성심’이라는 주보다. 교회의 전례에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은 마리아의 내적 믿음과 사랑,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과의 깊은 결합을 묵상하는 신심이다. 교황청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침」은 성모 성심 기념일이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 배치된 것 자체가 두 신심의 긴밀한 연결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녹양동성당에서는 현재도 매월 첫 토요일 오전 10시에 성모 신심 미사를 봉헌한다. 따라서 ‘성모 성심’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정해진 본당의 명칭 요소가 아니라 현재의 전례 생활에서도 확인되는 신심적 정체성이다.

지역 본당이면서 이주민 사목의 거점

녹양동성당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역 주민을 위한 일반 본당 사목과 이주민 공동체 사목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2012년 의정부교구는 녹양동성당을 이주사목 특성화 본당으로 지정했다. 현재 주일 14시 베트남어 미사가 정기적으로 편성되어 있고, 셋째 주에는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도 안내되어 있다.

따라서 방문자가 녹양동성당을 단순히 ‘의정부의 동네 성당’으로만 이해하면 본당 역사의 한 축을 놓치게 된다. 이곳은 지역 신자 공동체와 외국인·이주민 공동체가 같은 본당 공간 안에서 전례를 이어 온 장소다.

북한이탈주민과 민족화해 사목

2017년 본당은 북한이탈주민 특성화 본당으로 지정되었다. 본당의 현재 토요 미사표에는 셋째 토요일 오전 10시 ‘민족화해일치미사’가 별도로 안내되어 있다. 본당 동영상 자료에도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기도’가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 때문에 녹양동성당은 의정부교구가 자리한 경기북부의 지정학적·사목적 환경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본당이 북한 관련 역사 유적지나 순교성지라는 뜻은 아니다. 이곳의 의미는 현재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민족화해를 사목적 과제로 다루었다는 점에 있다.

사제 성소를 배출한 공동체

녹양동성당은 여러 본당 출신 사제를 배출했다. 본당 홈페이지가 현재 ‘본당출신사제’로 소개하는 인물에는 장명원 토마스, 장광민 요셉, 정재호 안드레아, 이한신 사도요한, 김윤찬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양두승 미카엘, 김승찬 미카엘, 백종하 바오로, 강석현 라파엘 등이 포함된다. 김준동 마르티노도 본당 출신 사제로 목록에 남아 있으나 현재 상태는 ‘환속’으로 표기되어 있다.

특히 본당 연혁에는 1996년 장명원 토마스가 ‘녹양동 출신 첫 사제’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장명원 신부의 사제수품 날짜는 본당 연혁과 본당출신사제 페이지가 각각 1996년 1월 29일과 1월 26일로 다르게 기재한다. 위키형 문서에서는 이 경우 ‘1996년 1월 사제품’이라고 서술하거나, 정확한 날짜가 필요하면 소속 교구의 사제 인사기록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수의 사제·수도성소가 나온 사실은 녹양동성당이 단순한 행정 단위 이상의 장기적 공동체 기반을 형성했음을 보여 주는 요소다. 다만 이를 ‘성소가 특별히 많은 본당’이라고 통계적 비교 없이 평가해서는 안 된다.

순례지인가, 생활 본당인가

녹양동성당은 공식적으로 순교성지나 교구 성지로 분류된 장소가 아니라 현역 본당이다. 따라서 방문의 기본 맥락은 관광보다 전례와 신앙 공동체에 있다. 역사와 건축을 보러 방문하는 경우에도 미사·고해성사·장례·혼인·교리·공동체 행사가 우선되는 공간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당 안에서는 미사 중 이동이나 촬영을 자제하고, 제대와 감실 주변에서는 전례 공간의 성격을 존중하는 것이 적절하다. 별도의 단체 견학이나 상세한 내부 촬영이 필요하다면 본당에 사전 문의하는 편이 좋다.

미사와 방문 시간

2026년 본당 홈페이지 기준 주일미사는 06:00, 09:00, 11:00, 14:00, 16:00(셋째 주 동티모르 공동체), 17:00에 편성되어 있다. 14:00은 베트남어 미사이며 17:00은 어린이·청소년·청년미사다. 토요일 18:00에는 주일 저녁미사가 있고, 매월 첫 토요일 오전 10시에는 성모 신심미사, 셋째 토요일 오전 10시에는 민족화해일치미사가 안내되어 있다.

미사 시간은 인사 이동, 전례력, 여름·겨울 일정, 공동체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실제 방문 직전에 본당 홈페이지나 사무실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교통과 접근성

본당 공식 안내에 따르면 수도권 전철 1호선 녹양역 1번 출구에서 현대아파트 방향으로 도보 약 5분 거리다. 버스 208·208-1번 이용 시 온누리 누가약국 정류장에서 도보 약 1분, 8번 버스 이용 시 녹양현대아파트 정류장에서 도보 약 5분으로 안내된다. 본당 자체 주차장은 무료로 안내되어 있다.

녹양역은 2006년 개통했고, 의정부시는 녹양역 개통과 택지개발이 지역의 도시화를 촉진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성당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것은 이 같은 지역 교통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방문 시 눈여겨볼 지점

방문자가 녹양동성당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외관만 보는 것보다 다음 맥락을 함께 보는 편이 좋다.

  1. 1992년 첫 미사가 독립 성전이 아닌 사제관 지하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2. 1993년 비닐하우스 가설 성당을 사용하며 현 성전을 지었다는 점.
  3. 현재 성전이 1995년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는 점.
  4. 성전이 주변 본당의 지원과 21개 본당을 돌며 모은 건축헌금으로 완성되었다는 점.
  5. 이후 덕정·양주 백석 등 주변 공동체가 녹양동성당의 관할에서 독립해 나갔다는 점.
  6. 현재도 베트남어 미사,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 민족화해일치미사가 함께 운영된다는 점.
  7. 성모 성심을 주보로 하고 첫 토요일 성모 신심미사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

이 일곱 가지를 함께 보면 녹양동성당은 유명 건축물이나 관광 명소라기보다 경기북부 지역 교회의 확장, 도시화, 이주민 사목, 민족화해 사목의 변화를 한 본당의 연혁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장소라는 특징이 선명해진다.

관련 장소와 인물

의정부1동성당

녹양동성당의 두 모본당 가운데 하나다. 녹양동성당 설립 당시에는 의정부4동성당으로 불렸으며, 녹양동성당 분가 때 674세대 2,042명이 새 본당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기록된다. 녹양동성당의 초기 성전 건립 바자회에도 주교좌 의정부성당과 함께 참여했다.

주교좌 의정부성당

녹양동성당의 또 다른 모본당이다. 녹양동성당 소개는 당시 의정부2동성당에서 94세대 219명이 녹양동성당으로 편입되었다고 기록한다. 2004년 의정부교구가 설정된 뒤 의정부성당은 주교좌 본당으로서 교구 중심 성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녹양동성당의 기원을 설명할 때 의정부1동성당과 함께 반드시 언급해야 할 장소다.

덕정성당

덕정 공동체는 녹양동성당과 매우 긴밀한 역사적 관계가 있지만, 그 역사가 녹양동성당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덕정성당 공식 연혁은 1900년 무렵 종현성당 관할 덕정공소로 시작된 계보를 기록하며, 1934년에는 덕정리성당으로 승격한 전력이 있다. 이후 여러 관할 변화를 거쳐 1992년 녹양동성당 관할 공소로 이관되었고, 1997년 다시 독립 본당으로 재승격했다.

따라서 ‘덕정성당은 녹양동성당에서 생긴 성당’이라고 단순화하기보다는, ‘오래된 덕정 공동체가 1992~1997년 녹양동성당 관할 공소로 있었고 이후 다시 독립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양주 백석성당

양주 백석 공동체는 녹양동성당이 직접 공소 성전 건립을 추진한 대표적인 분가 사례다. 녹양동성당은 2000년 백석 성전 부지를 구입하고 2001년 공소 성전을 착공했으며, 2002년 새 성전 준공 후 백석 공동체가 독립 본당이 되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양주 백석성당의 설립일을 2002년 9월 19일로 기록한다.

녹양동성당 연혁은 같은 해 10월 1일 백석공소의 본당 승격과 1,012명의 전출을 기록한다. 두 날짜는 서로 배척되는 기록이라기보다, 교구의 본당 설정일과 실제 분가·교적 전출일이 달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병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광적공소와 광적성당

녹양동성당 연혁에는 1999년 5월 16일 ‘광적공소 신설, 첫 미사’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양주시 광적면에는 의정부교구 광적성당이 존재하며 4지구에 속한다. 다만 현재 공개된 공식 광적성당 페이지에서는 1999년 공소 시기부터 현 본당으로 이어지는 상세 연혁을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두 공동체의 정확한 승격·이관 일자는 추가 사료 확인이 필요하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녹양동성당 성전 건립사에서 가장 중요한 외부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1993년 12월 30일 건축 공사 현장을 방문했고, 1995년 10월 8일 완성된 성전 봉헌식을 집전했다.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과 녹양동성당의 관계는 단순 방문이 아니라 성전 건축 과정과 봉헌이라는 두 시점에 걸쳐 확인된다.

김옥균 주교

1993년 4월 18일 현 성전의 기공 미사를 집전했다. 녹양동성당 건축사의 시작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

1994년 9월 10일 의정부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성전 완공을 위한 바자회 미사를 집전했다. 이 행사는 녹양동성당뿐 아니라 모본당인 의정부성당과 의정부1동성당이 함께 참여한 대규모 건축 지원 행사였다.

최창무 안드레아 주교

1994년 9월 3일 녹양동성당의 첫 견진성사를 집전했다. 당시 본당이 성전 건립 과정에 있던 초기 공동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첫 견진성사는 독립 본당으로서 전례와 성사 생활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의 중요한 표지였다.

임승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녹양동성당 초대 주임신부다. 1992년 9월 25일 부임해 1996년 10월 11일까지 재임했다. 임 신부의 재임기는 본당 설립, 첫 미사, 가설성당 설치, 새 성전 기공과 건축, 1995년 봉헌까지 녹양동성당의 형성기 전체와 겹친다. 따라서 녹양동성당 초기사를 설명할 때 핵심 인물로 볼 수 있다.

성세현 바르톨로메오 신부

2025년 2월 18일 부임한 제11대 주임신부이며, 2026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에서도 현 주임신부로 확인된다. 현재 본당의 행정·전례·사목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본당 출신 사제와 수도성소

본당은 장명원 토마스, 장광민 요셉, 정재호 안드레아, 이한신 사도요한, 김윤찬 프란치스코, 양두승 미카엘, 김승찬 미카엘, 백종하 바오로, 강석현 라파엘 등을 본당 출신 사제로 소개한다. 이 가운데 양두승 미카엘은 작은형제회 소속이다. 본당 홈페이지는 각 인물의 사제수품일과 일부 서품성구까지 기록하고 있어, 향후 인물별 상세 문서를 만들 때 1차적인 본당 기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안점순 마리아

본당 연혁에는 2015년 4월 24일 본당 신자 안점순 마리아가 재산 전액을 기부했고, 그해 7월 본당이 무의탁 노인 공동생활을 위한 주택을 구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1월 이 시설은 본당 직접 운영 대신 교구 사회사목국으로 양도되었다. 지역 본당의 기부와 사회사목이 실제 시설 사업으로 연결된 사례라는 점에서 관련 인물로 기록할 가치가 있다.

참고자료 및 출처

자료 선택 원칙

이 문서는 다음 순서로 출처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1. 본당 공식 홈페이지와 본당 공식 연혁: 녹양동성당 자체의 설립·건축·사목·인사 기록 확인.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본당 설립일, 현 소속 교구·지구, 주소, 주보, 현 주임신부, 신자 수 등 현재 행정 정보 확인.
  3. 의정부교구 내 관련 본당의 공식 연혁: 모본당·분가 본당·공소의 계보 교차검증.
  4. 의정부시 공식 자료: 녹양동의 지명 유래와 지역 도시화 맥락 확인.
  5.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리·전례 자료 및 교황청 자료: 성모 성심의 전례적·신학적 의미 확인.

본당 연혁은 공동체의 내부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날짜 오기나 행정 기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덕정성당 승격일, 양주 백석성당 승격일, 일부 본당 출신 사제의 사제수품일에서 자료 간 차이가 확인된다. 이러한 경우 본문에서는 한 자료를 임의로 선택하기보다 두 기록을 함께 제시하거나, 더 상위의 공식 주소록과 교구 기록을 우선했다.

주요 출처

검증 시 특히 주의할 항목

현재 관할 경계: 본당 소개 페이지가 구 행정명칭을 일부 사용하므로 특정 주소의 현재 교적 관할은 본당 또는 교구에 확인해야 한다.

본당 설립일: 1992년 9월 24일. 초대 주임신부 부임일(9월 25일), 첫 미사일(10월 12일), 성전 봉헌일(1995년 10월 8일)과 구분해야 한다.

덕정성당 독립 시점: 녹양동성당 연혁과 덕정성당 연혁의 날짜가 다르므로 ‘1997년 가을 재승격’으로 이해하고 세부 기준일은 교구 공문 확인이 필요하다.

양주 백석성당 설립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2002년 9월 19일, 녹양동성당 연혁은 10월 1일 본당 승격·신자 전출을 기록한다. 두 기록을 병기하는 것이 안전하다.

장명원 토마스 신부 사제수품일: 녹양동성당 연혁에는 1996년 1월 29일, 본당출신사제 페이지에는 1월 26일로 기록되어 있어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건축양식: 외관에 아치와 뾰족탑 등 전통적 교회 건축 어휘가 보이지만 공식 설계 설명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고딕 양식’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동티모르 공동체 미사 언어: 본당 홈페이지에 ‘동티모르공동체미사(셋째주)’와 ‘스페인어’ 표기가 함께 있어 방문 전 본당 확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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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녹양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9월 21일 22:38. https://missamap.com/ko/kr/nogyang-parish-mass-tim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