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

성지

장소 소개

순교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는 김해 진례 지역에 자리한 마산교구의 성지·사적지로,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도 같은 이름과 위치로 등재되어 있다. 진례본당이 문의와 관리를 맡는 이곳은 박대식 빅토리노 복자의 유해가 묻힌 무덤을 중심으로 형성된 순례 장소이다. 성당이나 기념관이 중심인 성지와 달리, 한 순교자의 실제 안장지가 신앙 기억의 핵심이라는 점이 이 장소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박대식 빅토리노는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순교한 평신도로, 한국 교회가 공적으로 공경하는 복자이다. 따라서 이 묘소를 찾는 일은 옛 무덤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부 경남에 천주교 신앙이 뿌리내리던 과정과 박해를 견딘 평신도의 증언을 한 사람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 기억하는 순례가 된다. 후대에 다른 곳으로 옮겨 조성한 기념 묘역이 아니라 순교 뒤 시신이 모셔진 자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이 묘소의 역사적·신앙적 의미를 더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복자의 이름뿐 아니라 가족이 지켜 낸 매장지와 지역 교회가 보존해 온 기억 자체가 순례의 중요한 대상이 된다.

역사와 유래

박대식 빅토리노는 1812년 경상도 김해 예동, 오늘날의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에서 태어났다. 천주교에 입교한 뒤 신앙생활을 이어 가던 그는 1868년 박해 때 조카 박수연과 함께 체포되어 김해 관아에 갇혔다. 옥중에서 다른 교우들과 신앙을 굽히지 않은 그는 대구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끝내 배교하지 않았고, 같은 해 10월 12일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대구에서 그의 시신을 찾아 고향으로 모셔 왔다. 그러나 선영에 안장하는 데 반대가 있어, 아들과 친척들은 지금의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책골에 있는 유씨 문중 산에 평장으로 묻었다. 마산교구 자료는 이 무덤이 그 뒤 한 번도 이장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1956년 봄 후손들은 봉분을 크게 다듬고 부인의 묘도 옮겨 묘역을 정비하였다.

1966년 4월 15일에는 당시 진영본당 주임 유창호 토마스 신부의 주선으로 비석이 세워졌다. 이때 세례명이 분명히 확인되지 않아 비석에는 임시로 ‘노롄조(라우렌시오)’가 새겨졌으나, 교회사 연구와 후손의 노력 끝에 2001년 8월 그의 세례명이 ‘빅토리노’였음이 확인되었다. 이 과정은 오래된 순교자 묘소가 문헌 연구와 지역 교회의 기억을 통해 다시 정확한 이름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박대식 빅토리노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순교 직후 가족이 어렵게 수습해 모신 무덤이 세대를 거쳐 보존되고, 순교자의 정확한 세례명이 밝혀진 뒤 복자 공경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묘소는 박해기의 사건과 오늘의 교회 기억을 직접 이어 주는 장소가 되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순교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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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마산교구 (Diocese of Masan)

공식 홈페이지: https://cathm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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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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