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지

성지

장소 소개

순교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지는 경상남도 통영시 세병관 정문 앞 잔디밭 일대에 마련된 천주교 마산교구의 순교 사적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전국 성지·순교 사적지·순례지 안내는 이곳을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지’로 공식 등재하고 있으며, 태평동성당이 안내 연락처로 연결되어 있다. 성당 건물이 아니라 한 평신도 순교자의 마지막 신앙 증거가 통영의 실제 역사 공간과 맞닿아 있는 장소라는 점이 이 순교지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현재의 순교지는 통제영과 세병관 주변에 남은 역사 공간 속에서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삶과 순교를 기억하고 묵상하도록 돕는 장소다. 방문자는 화려한 성전보다 관아와 옥터가 있던 통영의 역사적 배경을 마주하며, 박해 시대 한 평신도가 지킨 신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공식 순례지 안내에 포함된 이곳은 통영의 지역사와 한국 천주교 순교 신앙의 기억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사적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와 유래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1816년 제주 함덕에서 태어나 배를 타고 장사하던 사람이었다. 1857년 2월 동료들과 무역을 위해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한 달 넘게 표류한 끝에 중국 광동 해역에서 구조되었다. 그는 홍콩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옮겨져 조선 신학생에게 교리를 배웠고, 그해 5월 세례를 받은 뒤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 뒤 그는 가족과 배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하며 신앙을 나누었다. 1858년에는 페롱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뒤 통영으로 무역을 왔다가 게섬에서 천주교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었고, 통영 관아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김기량은 혹독한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았고 옥에 갇힌 뒤에도 함께 있던 교우들에게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했다. 통영 관장은 그를 배교시킬 수 없다고 대구 감사에게 보고했고, 다시 심한 매질을 가한 뒤 옥에서 교수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는 1867년 1월, 당시 51세의 나이로 통영에서 순교했다. 오늘의 통영 관아와 옥터 일대는 그가 신앙을 증거한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 교회는 그의 신앙과 순교를 공식적으로 기려 왔고,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거행한 시복식에서 김기량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복자품에 올랐다. 통영의 순교지는 제주에서 시작된 그의 삶이 마지막 증언에 이른 장소이며, 한 평신도의 선교와 순교가 한국 천주교의 지역 역사를 잇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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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https://cathm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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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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