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중앙동성당은 천주교 마산교구 창원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창원시 진해구 중앙 생활권의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공동체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중앙동을 마산교구 본당으로 등재하고 있으며, 현 성당은 진해의 오래된 도심 안에서 지역 신자들의 전례와 교리, 친교와 봉사의 중심 역할을 한다.
중앙동성당은 진해 지역 가톨릭 공동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의 본당은 주변 지역의 다른 본당이 분리되기 전부터 진해 지역 신자들을 돌보아 온 중심 공동체의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방문자는 현재의 성당 건물과 함께, 해방 이후 진해의 사회적 변화 속에서 신앙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성장해 온 장소라는 점을 살펴보면 이 본당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중앙동성당은 진해의 중심 시가지 안에 자리한 오래된 본당이라는 점에서, 지역의 도시사와 교회사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의 본당 공동체는 과거의 건물과 제도를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같은 지역에서 계속되는 전례와 신앙교육을 통해 역사적 유산을 살아 있는 신앙생활로 이어 간다.
역사와 유래
중앙동성당의 본당 역사는 해방 직후 진해의 변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군이 진해에 주둔하던 시기 군종신부 드레그 신부가 경화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한국인 신자들과 관계를 맺었고, 신자들은 그와 협의하여 현재 성당 부지에 있던 일본 사찰 안국사를 인수하는 일을 추진하였다. 당시 지역 인사들의 도움으로 안국사와 인근 건물을 확보하면서 진해 가톨릭 공동체가 독립 본당으로 성장할 물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1946년 3월 당시 대구교구는 약 150명의 신자가 있던 진해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김경우 알렉시오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콜레라 유행으로 실제 부임은 4월 10일에 이루어졌으며, 교회 공동체는 안국사 건물을 중심으로 본당 체계를 정비해 나갔다.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기존 일본 시설을 새로운 지역 교회의 공간으로 바꾸어 간 과정이 본당 초기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1957년에는 장병화 신부 재임 중 기존 안국사 건물을 헐고 새 성전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뒤이어 성전 봉헌이 이루어졌다. 1965년 경화동본당이 분리 설립되면서 진해본당은 현재의 동명에 따라 중앙동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렇게 중앙동성당은 해방 직후 진해공소의 본당 승격에서 출발해 성전 신축과 분가를 거치며 오늘의 본당으로 이어졌다.
초기 본당이 사용한 공간에는 안국사만이 아니라 당시 금융조합 건물과 주변 가옥도 포함되어 있었다. 본당은 이 건물들을 차례로 확보하고 정비하면서 예배와 사제 생활, 교육과 공동체 활동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했다. 해방 직후 남겨진 도시 시설을 교회 공동체의 필요에 맞게 바꾸어 간 과정은 중앙동성당이 진해의 사회 변화 속에서 성장했음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장면이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중앙동 성당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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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co Diary
교구
마산교구 (Diocese of Masan)
공식 홈페이지: https://cathm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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