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창원 웅천 왜성은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의 남산 일대에 남아 있는 임진왜란기 성곽 유적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기념물로 보호되는 역사 유적이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곳을 마산교구의 성지·사적지 목록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장소는 성당이나 순교자 묘역이 아니라, 전쟁 유적과 한국 천주교 초기 접촉사의 기억이 겹쳐 있는 독특한 가톨릭 사적지로 이해해야 한다.
웅천 왜성의 가톨릭적 의미는 16세기 말 이곳에서 서양 선교사가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는 역사와 연결된다. 순례자는 성곽의 군사적 성격과 임진왜란의 비극을 함께 바라보면서, 조선 땅과 가톨릭 선교사가 처음 직접 마주했던 시기의 흔적도 살필 수 있다. 성곽 자체가 신앙의 대상인 것은 아니며, 한국 천주교회가 이곳을 기억하는 이유는 전쟁 속에서 이루어진 초기 가톨릭 접촉의 역사 때문이다. 이처럼 웅천 왜성은 신앙의 역사만을 분리해 기념하기보다 전쟁, 국제 교류, 선교가 한 장소에서 교차한 복합적인 역사 현장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역사와 유래
웅천 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남해안에 설치된 왜군의 성곽 가운데 하나로, 제포만과 안골만 사이의 남산 능선을 이용해 조성되었다. 바다와 육지의 이동을 함께 통제하기 쉬운 위치였고 안골포, 가덕도, 거제도 방면과도 연결하기 유리해 전략적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는 이곳을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진을 치고 제2기지로 활용한 곳으로 설명한다.
성의 축성 경위에는 서로 다른 기록과 해석이 남아 있다. 과거 자료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쌓았다는 기록도 있지만, 원래 있던 웅포성을 왜군이 개축해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남은 성벽과 축대는 전체의 일부이며, 산 정상부의 본성과 아래쪽 외곽을 단계적으로 배치한 일본식 성곽 구조를 보여 준다. 따라서 축성자를 한 사람으로 단정하기보다 임진왜란기 왜군의 장기 주둔과 남해안 방어 체계를 보여 주는 유적으로 보는 것이 안전하다.
가톨릭사와 연결되는 지점은 당시 일본에 체류하던 세스페데스 신부가 이곳에 와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전쟁 중 조선 땅에 들어온 초기 서양 가톨릭 성직자로 기억되며, 웅천 왜성은 그 활동과 관련된 장소로 한국 천주교회의 성지·사적지 목록에 올라 있다. 이 기억은 선교 활동이 전쟁이라는 폭력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복잡한 배경도 함께 보게 한다.
오늘날 웅천 왜성은 문화유산인 성곽과 가톨릭 사적지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남아 있는 성벽은 임진왜란의 군사사를 전하고, 세스페데스 신부와 관련된 기억은 한국 천주교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 조선과 서양 가톨릭 세계가 접촉했던 한 장면을 전한다. 두 층위를 함께 읽을 때 이 장소의 역사적 의미가 보다 온전히 드러난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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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마산교구 (Diocese of Masan)
공식 홈페이지: https://cathm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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