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전주숲정이성지는 조선시대 전주에서 군사훈련장과 형장으로 사용되던 숲정이 터에서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전주교구의 성지다. 전주교구는 이곳에서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비롯한 여러 박해기에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고 설명한다. 도심 가까이에 남아 있는 실제 순교터라는 점 때문에, 숲정이는 전주 지역 순교 신앙의 역사를 장소 자체로 증언하는 곳이다.
현재 성지에는 순교의 기억을 전하는 순교자비가 세워져 있으며, 전주교구 자료는 숲정이 순교터가 도지정 기념물 제71호임을 밝히고 있다. 방문자는 이곳에서 화려한 시설보다 순교가 일어난 지형과 기념 표지를 통해 박해기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숲정이성지는 전주교구의 순교사를 이해하고 순교자들의 신앙을 묵상하는 데 중요한 현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역사와 유래
‘숲정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숲이 짙게 우거져 있던 데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군사훈련장으로 쓰였고, 가까이에 전주천이 있어 형장으로도 이용되었다. 천주교 박해가 이어지면서 이곳은 전주 지역 신자들이 처형되는 대표적인 순교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유항검의 가족 가운데 신희, 이육희, 이순이 루갈다, 유중성과 김천애 등 동료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오랫동안 전주옥에 갇혀 있던 이일언, 신태보, 이태권, 정태봉, 김대권과 여러 신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바쳤다. 숲정이는 감옥에서 이어진 고난이 실제 처형으로 마무리된 장소라는 점에서 전주옥터와도 역사적으로 연결된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 조화서, 정원지 등 여섯 명이 순교했고, 이듬해인 1867년에도 김사집을 비롯한 신자들이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여러 차례의 박해가 같은 장소에 겹치면서 숲정이는 한 사건만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19세기 전주 지역 박해사의 여러 층위를 품은 순교터가 되었다.
박해가 끝난 뒤에는 이명서 성인의 후손이 순교터를 매입하고 순교자비를 세워 기억을 보존했다. 이후 숲정이 순교터는 도지정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어 역사적 장소로 보호되고 있다. 형장으로 쓰이던 터가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성지로 바뀐 과정은, 박해의 장소가 신앙의 증언과 기억의 장소로 전환된 흐름을 보여 준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전주숲정이성지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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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0대
- 지상 2층 · 지하 1층
- 1961년 사용승인
- 연면적 2,798㎡
건축물대장 조회값 ·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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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교구
전주교구 (Diocese of Jeonju)
공식 홈페이지: https://www.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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