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도원 / 수도회관
장소 소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인천 분원은 천주교 인천교구 지역에 자리한 여자 수도회 공동체로, 공식 주소록에는 ‘기도의 집’과 함께 인천 분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수도회는 우리 민족과 온 인류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설립 목적과 사명으로 밝히며, 기도생활과 공동생활, 사도적 생활을 서로 분리되지 않는 수도생활의 축으로 제시한다.
수도회가 설명하는 고유 카리스마는 ‘말씀의 육화 신비에 동참하는 복음 선포’이며, 이를 성모님의 영성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따라서 인천 분원과 기도의 집은 단순한 거주 시설이라기보다, 수도자 공동체의 기도와 복음적 삶을 바탕으로 피정과 영적 쉼의 공간을 제공하는 수도회 사도직의 한 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수도회 공식 사이트는 가정동 기도의 집을 현재 피정·연수 시설 가운데 하나로 별도 안내하고 있다. 이는 인천 분원이 내부 공동체 생활에만 머물지 않고, 수도회의 기도 전통을 교회 구성원들과 나누는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역사와 유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는 1932년 6월 27일 평양에서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당시 평양교구장이던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존 에드워드 모리스 주교였으며, 한국인 여성 수도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한 청원·수련과 첫 서원 과정이 1930~1940년대에 이어졌다.
한국전쟁 전후의 격변은 수도회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공식 연혁은 1950년 북한 당국의 수녀원 건물 징발로 공동체가 일시 해산되었다고 기록한다. 이후 남한에서 공동체가 다시 정비되었고, 1970년에는 통일될 때까지 평양교구 소속에서 서울대교구 소속 수도회로 임시 전환되었다.
인천 가정동과의 직접적인 연결은 1970년대에 마련되었다. 수도회는 1974년 10월 24일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를 기념하는 성당과 기도의 집을 가정동에 완공했고, 기도의 집은 1975년 7월 5일 문을 열었다. 오늘 인천 분원과 기도의 집이 이어지는 자리는 이 시기에 형성된 수도회의 기도·피정 사도직의 역사적 기반 위에 놓여 있다.
전쟁 뒤 공동체는 1951년 부산 대청동에서 본원 축성식을 거행하며 남한에서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1955년에는 본원과 수련소를 서울 흑석동으로 옮겼다. 1964년 다시 정릉으로 본원을 이전하고 1966년 본원 건물을 신축하는 등 공동체의 기반을 단계적으로 정비했다. 이런 재건의 흐름을 거쳐 1970년대에는 성서 사도직과 기도의 집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도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가정동 기도의 집이 세워진 시점은 수도회가 성서 사도직을 새롭게 전개하던 시기와도 겹친다. 1972년 가톨릭 대학생 성서모임이 시작되고 1974년 가정동의 기도 공간이 완성된 흐름은, 전쟁 뒤 재건한 공동체가 내부 수도생활을 안정시키는 데서 더 나아가 말씀과 기도 중심의 사도직을 교회 안으로 넓혀 가던 변화를 보여 준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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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인천교구 (Diocese of Inch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inche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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