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만수1동 성당은 천주교 인천교구 남동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주보는 삼위일체이다. 현재 마리아의 딸 수도회가 본당 사도직에 함께하고 있으며, 만수동 생활권의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 교리교육과 신심 활동을 이어 가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과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본당이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 속에서 독립된 본당으로 성장했음을 함께 보여 준다.
본당의 성격은 성당 안의 전례 활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문화 공간을 마련하고 평신도 교육과 선교 활동을 조직하는 등 지역 주민과 신자들을 잇는 역할을 넓혀 왔다. 특히 1990년대의 ‘새로운 양 찾기’와 ‘잃은 양 찾기’ 운동은 본당 공동체가 신앙교육과 복음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의 만수1동 성당은 이러한 공동체적 전통 위에서 남동구 지역의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본당이다.
역사와 유래
만수1동본당의 출발은 1980년대 만수 지역의 급격한 도시화와 맞물린다. 산업도로 개통, 인천시청 이전과 대단위 아파트 조성으로 인구와 교세가 늘자 인천교구는 1988년 1월 10일 만수동본당, 곧 현재의 만수3동본당에서 남동본당을 분리해 신설했다. 1월 17일 모본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으며, 새 공동체는 성당을 마련하기 전까지 주일미사는 모본당에서, 평일미사는 신자 가정에서 봉헌했다.
같은 해 2월 1일에는 임대한 부지에 임시 천막성당과 사무실·회의실을 완공했다. 이후 신자들이 헌금과 각종 모금 활동으로 건축기금을 마련했고, 현 부지에 약 718평의 땅을 확보해 1989년 4월 2일 대지 축복식과 기공식을 거행했다. 성당과 사제관은 1990년 4월 14일 완공되었고, 교리실 등 부속시설 보완을 거친 뒤 1991년 5월 18일 나길모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열었다. 1993년 1월에는 본당 명칭을 남동에서 만수1동으로 바꾸었다.
1990년대에는 건물 확충과 함께 사목 방식도 넓어졌다. 1994년 수녀원과 문화원 강당을 마련해 지역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새로운 양 찾기’와 ‘잃은 양 찾기’ 운동을 통해 예비신자 교육과 쉬는 신자 돌봄을 체계화했다. 이 활동은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한 본당 선교 사례로 알려졌다. 만수1동본당의 역사는 도시 성장에 대응해 생겨난 공동체가 성전 건립, 평신도 참여, 복음화 활동을 함께 발전시켜 온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만수1동 성당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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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구 경사로있음공식 자료 확인 2026년 8월 24일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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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인천교구 (Diocese of Inch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inche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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