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부평2동 성당은 인천교구 부평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부평 지역 가톨릭 공동체의 오래된 사목 중심 가운데 하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본당의 주보를 성모 성심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예수 성심 시녀회가 본당 사도직에 함께하고 있다. 미사와 성사, 교리 교육과 공동체 활동을 중심으로 부평동 일대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지역 교회다.
본당은 오랜 역사 속에서 주변 지역에 여러 새 본당이 분리되어 나갈 만큼 부평 지역 천주교 공동체 확장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해 왔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교세 확장과 사회복지 활동의 흔적을 품으면서도, 지역 신자들의 일상적인 전례와 성사 생활을 담당하는 본당이라는 현재의 역할이 중심이다. 방문자는 이곳을 부평 천주교 공동체의 성장 과정과 현재의 생활 신앙이 함께 이어지는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와 유래
부평 지역의 가톨릭 공동체는 본당 설립보다 앞선 공소 시기에서 시작된다.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답동 본당의 드뇌 신부가 1909년 부평 공소를 마련했고, 이후 신자 수가 늘었으나 1920년대 후반에는 공소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1941년에는 인천 육군 조병창의 직원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공소가 다시 형성되었고, 이듬해에는 백마장 공소도 별도로 마련되었다.
6·25전쟁 중이던 1952년 3월 부평 본당이 정식으로 설립되면서 안정적인 사목 체계가 갖추어졌다. 초대 주임 김영식 베드로 신부는 전쟁과 피란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역 사회 안에서 본당 기반을 세우는 한편, 1952년 연백성모원을 열고 1955년에는 성모자애병원을 개원하는 등 사회복지 사업도 전개했다. 1950년대 말에는 현재의 부지를 마련해 성당 건축을 시작했고, 후임 사제가 공사를 마무리했다.
지역 인구와 교세가 늘면서 부평 본당의 관할은 차츰 분화되었다. 1964년 부평1동 본당(현 부평4동), 1978년 주원 본당(현 간석4동), 1982년 부평3동 본당, 1983년 일신동과 부평5동 본당 등이 차례로 분리되었다. 본당 자체도 1964년 무렵 ‘부평2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서 오늘의 이름으로 정착했다.
이 과정은 부평2동 본당이 단순히 오래된 성당 한 곳에 머문 것이 아니라 전후 부평 지역의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 속에서 여러 새 공동체가 태어나는 모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준다. 오늘의 본당은 그 역사 위에서 지역 신자들의 전례와 성사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부평2동 성당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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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0대
- 지상 3층 · 지하 1층
- 1992년 사용승인
- 연면적 1,694㎡
건축물대장 조회값 ·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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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co Diary
교구
인천교구 (Diocese of Inch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inche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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