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머리성지
성지
장소 소개
원머리성지는 천주교 대전교구가 소개하는 당진 신평 지역의 순교 성지이다. 이곳은 조선 교회 초기부터 형성된 교우촌의 기억과 박해 시기 순교자들의 신앙 증거가 함께 남아 있는 장소로, 현재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의 묘를 비롯한 순교자 기억을 중심으로 기도와 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성지 안팎에는 원머리 공소 강당과 이 지역 신앙공동체의 역사를 함께한 새터·음섬 공소 강당도 보존되어 있다.
대전교구는 원머리에서 박해 순교자와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을 함께 기억하며 모두 22명의 순교자를 위한 시복·시성 기도를 이어 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곳은 단순히 옛 묘역을 보존한 장소에 그치지 않고, 내포 지역에서 이어진 평신도 공동체의 삶과 순교 신앙, 공소 공동체의 흔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순례 공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역사와 유래
원머리의 가톨릭 신앙공동체는 이존창이 내포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1785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대전교구는 설명한다. ‘원머리’라는 지명은 바닷가 갯벌을 논으로 개간하기 위해 쌓은 둑, 곧 ‘언(堰)의 첫 머리’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의 신자들은 염전과 어업, 농업에 종사하며 마을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1866년부터 이어진 병인박해 시기에는 원머리 공동체의 신자 20명이 홍주와 해미, 수원에서 순교하였다. 성지에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순교한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의 묘가 남아 있어, 문헌으로 전해지는 박해의 역사가 실제 묘역과 연결된다. 이들의 무덤은 오랜 교우촌이 겪은 박해와 신앙 증거를 오늘에 전하는 핵심 유산이다.
박해 이후에도 공동체의 흔적은 공소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대전교구는 원머리 공소 강당과 원머리와 역사를 같이한 새터·음섬 공소 강당이 보존되어 있다고 밝힌다. 교구 자료에는 2000년 4월 성전 신축 당시의 순교자 묘역과 이후 이장된 현재 묘역의 모습도 남아 있어, 성지 공간이 정비되어 온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원머리성지는 박해 순교자 20명과 근현대 순교자 2명을 함께 기억하며 시복과 시성을 위해 기도하는 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기 교우촌, 박해와 순교, 공소 공동체의 지속이라는 여러 층위가 한 장소에 겹쳐 있다는 점이 원머리성지 역사의 중요한 특징이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원머리성지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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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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