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수리치골 성모성지는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자리한 천주교 대전교구의 성지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이곳을 대전교구의 성지·사적지로 등재하고 있으며, 현재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가 책임수도회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성지는 박해 시대 교우촌의 기억과 함께 한국 교회에서 성모 성심 신심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다.

수리치골의 중심 의미는 단순히 성모 신심을 기념하는 데 있지 않다. 박해 속에서 교회 공동체의 보호와 신앙의 자유를 청했던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기도가 이곳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며, 그 정신이 오늘날 순례와 기도의 장소로 이어지고 있다. 성지에는 수도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어 기도와 영적 쇄신을 위한 공간이라는 성격도 뚜렷하다. 따라서 수리치골은 한국 천주교의 박해사, 성모 신심, 수도 공동체의 기도 전통이 한데 이어지는 성모 순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와 유래

수리치골은 박해 시대 신자들이 숨어 살던 교우촌으로 형성되었다. 1845년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조선에 입국한 뒤 이듬해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박해를 피해 이 지역으로 몸을 피했다. 산골의 교우촌이 선교사들을 보호하고 교회 공동체가 신앙을 이어 갈 수 있는 피난처 역할을 한 것이다.

1846년 11월 2일 두 선교사는 수리치골에서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며 조선 교회가 박해를 벗어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성모성심회를 조직하였다. 시작은 한 오두막집에 모인 소수의 신자들이었지만, 이들은 프랑스 파리의 승리의 성모 대성당에 편지를 보내 회의 명부에 자신들을 올려 달라고 청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작은 공동체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더 넓은 기도 운동과 연결되었다.

신자들은 주일마다 수리치골에 모여 조선 교회의 평화와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고, 이 전통은 수리치골을 한국 교회 성모성심 신심의 중요한 발상지로 기억하게 했다. 오늘날에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가 이곳을 맡고 있어, 박해기 교우촌에서 시작된 기도와 성모 신심의 전통이 수도 공동체의 삶과 순례 사목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수리치골의 역사는 박해를 피한 은신처가 교회 전체를 위해 기도하는 성모 신심의 장소로 변화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수리치골 성모성지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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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0대
  • 지상 1층 · 지하 0층
  • 2019년 사용승인
  • 연면적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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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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