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신리성지는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자리한 천주교 대전교구의 순교 성지이자 본당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같은 장소를 대전교구 당진지구의 ‘신리성지’ 본당과 성지·사적지로 함께 등재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 후기 내포 지역의 큰 천주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마을이며,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를 비롯한 신리의 다섯 성인과 많은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억하는 장소이다.

현재 성지에는 성당과 성 다블뤼 주교관, 순교미술관, 다섯 성인을 기리는 경당들, 십자가의 길과 야외성당 등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다블뤼 주교가 머물렀던 장소와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 전통이 한 공간 안에 이어져, 순교자의 삶과 박해기 교회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 신리성지는 박해의 비극만을 기억하는 곳이 아니라, 내포에서 뿌리내린 신앙 공동체가 오늘날 본당과 순례지의 형태로 이어지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역사와 유래

신리는 18세기 말 내포에 천주교가 퍼진 뒤 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마을 가운데 하나였다. 신리성지 공식 연혁은 내포의 천주교가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의 선교 이후 널리 뿌리내렸고, 신리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중엽에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드나들고 교회 활동을 이어 가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는 조선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신리에 머물렀고, 성 손자선 토마스의 집은 그의 거처와 교회 활동의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블뤼 주교와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성 위앵 루카 신부, 성 황석두 루카 등이 신리 인근에서 체포되었고, 성 손자선 토마스도 순교하였다. 이들은 훗날 성인으로 공경받게 되었고, 신리는 다섯 성인의 삶과 순교를 함께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박해 이후 약해졌던 공동체는 다시 회복되었다. 신리성지의 공식 연혁에 따르면 1923년 신리를 포함한 거더리 일대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1927년 신자들이 다블뤼 주교가 머물렀던 성 손자선의 집을 매입해 공소로 사용하였다. 이 건물은 이후 주교관으로 보존되어 성지의 역사적 핵심 공간이 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순교자 현양과 성역화가 본격화되었고, 2000년대에는 기념성당과 전시·기도 공간이 확충되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2009년 1월 14일 신리성지본당이 설립된 것으로 기록한다. 이로써 신리는 박해기 교우촌과 순교 사적지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실제 본당 공동체가 살아 있는 성지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신리성지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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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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