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골성지 / 작은재성지

성지

장소 소개

산막골성지와 작은재성지는 대전교구가 함께 안내하는 충남 서천의 순례지로, 하부 내포 지역의 박해기 신앙 공동체와 이름 없이 묻힌 신앙 선조들을 한 흐름 안에서 기억하는 장소다. 산막골은 판교면 금덕리의 산골 교우촌 터를 중심으로 하고, 작은재는 문산면 수암리의 고갯마루와 줄무덤의 기억을 품고 있다. 서로 떨어진 두 지점이지만 한 순례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어, 공동체의 삶이 남은 자리와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함께 바라보게 한다.

오늘 이 두 성지는 화려한 건축물보다 사람과 장소에 남은 신앙의 기억을 묵상하는 데 중심이 있다. 산막골에서는 옛 교우촌과 선교 활동의 흔적을, 작은재에서는 신앙 선조들을 기리는 십자가와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할 수 있다. 대전교구가 두 곳을 잇는 도보 순례 구간을 안내하는 것도 하부 내포 교회의 기억을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길을 따라 이어 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두 장소를 함께 순례할 때 산막골과 작은재가 하나의 성지권처럼 이해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역사와 유래

산막골 교우촌은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간으로 숨어들면서 형성되었다. 외부의 눈을 피해 이어진 공동체였지만 고립된 은신처에 머물지 않고 인근 교우촌들과 연결되며 하부 내포 지역 선교의 한 중심이 되었다. 대전교구 자료는 산막골 출신으로 기록된 순교자가 열 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이처럼 산막골은 박해를 피하기 위한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신자들이 서로 신앙을 북돋우고 선교사와 접촉하던 교우촌의 성격을 함께 지녔다.

이곳은 프랑스 선교사 페롱 신부의 사목 활동 근거지이기도 했다. 페롱 신부는 베르뇌·다블뤼 주교와 함께 활동했으며, 성 황석두 루카는 가족과 함께 산막골에 6년 동안 머물면서 선교사들의 복사와 한문 교사, 신자 회장 역할을 맡았다. 다블뤼 주교가 산막골을 찾아 세례를 베푼 기록도 있고, 가까운 불무골에 머물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이곳을 오가며 페롱 신부와 교류하였다. 산중의 작은 교우촌이 당시 조선 교회 안팎의 선교망과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작은재 고갯마루에는 주변에서 숨어 살던 신앙 선조들의 줄무덤이 있었다. 훗날 임도를 내는 공사 과정에서 묵주와 십자고상 같은 성물이 발견되었으나, 유해와 성물은 인근에 다시 묻혔고 정확한 매장 지점은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교구는 그 기억을 잇기 위해 고갯마루에 십자가, 야외 제대와 십자가의 길 14처를 마련하였다. 정확한 이름이나 무덤의 위치가 남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박해기 신앙 공동체가 겪은 단절을 보여 준다.

이처럼 산막골과 작은재는 한쪽은 살아 있는 교우촌과 선교 활동의 흔적을, 다른 한쪽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 신앙 선조들의 죽음과 장례의 흔적을 보여 준다. 두 지점을 잇는 순례는 박해기의 신앙이 공동체의 삶과 죽음 모두를 통해 이어졌음을 되새기게 하며, 하부 내포의 교회사에서 서로 보완되는 두 기억을 한 길 안에 묶어 준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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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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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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