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진산성지는 천주교 대전교구가 관리하는 순교 성지로, 1791년 진산사건과 그 사건으로 순교한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기억하는 곳이다. 진산사건은 조선 교회가 제사 문제를 둘러싸고 국가 권력과 본격적으로 충돌한 초기 박해의 한 장면으로, 이곳은 두 복자의 신앙 선택과 한국 천주교회의 박해사를 함께 되새기는 순례지라는 정체성을 지닌다.

성지 안에서는 진산사건과 인물, 천주교 전래 과정을 소개하는 역사 자료와 성당 공간을 통해 당시의 신앙과 지역 공동체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진산성지는 특정 순교자만을 기리는 장소를 넘어, 조선 후기 천주교 신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박해 속에서 이어졌는지를 묵상하게 하는 대전교구의 대표적인 역사·신앙 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와 유래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교 신앙이 퍼지면서 진산의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도 교리를 받아들였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 신자들에게 제사를 금지한다는 지침을 내린 뒤, 두 사람은 집안의 신주를 없애고 이듬해 윤지충의 어머니 장례를 천주교 신앙에 어긋나지 않는 방식으로 치렀다. 이 일은 조정에까지 알려졌고, 두 사람은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뜻을 굽히지 않은 채 1791년 전주에서 처형되었다. 이 사건이 이른바 진산사건, 또는 신해박해이다.

박해가 이어지는 동안 진산의 신앙 공동체는 공개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웠다. 1886년 조불조약 이후 선교사들의 활동 여건이 나아지면서 진산 지방리에 가사벌 공소가 마련되었고, 지역 신자들은 다시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1927년에는 가사벌 공소 이의규 회장이 땅을 기증하면서 공소가 현재 성지 자리로 옮겨졌고 성당이 세워졌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중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복되면서 진산의 역사적 의미가 다시 널리 조명되었다. 이후 기존 공소는 진산성지로 승격되어, 1791년 사건의 기억과 이후 지역 공동체의 신앙 계승을 함께 보존하는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진산성지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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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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