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실성지
성지
장소 소개
황무실성지는 천주교 대전교구의 성지·사적지로, 당진 합덕 일대에 형성되었던 오래된 교우촌을 기억하는 장소다. 대전교구는 황무실을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초기부터 신자들이 살았던 교우촌이자, 박해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머물며 사목할 수 있었던 은신처로 소개한다. 현재는 신합덕 성당의 관할 아래 그 신앙 공동체와 순교의 기억을 보존한다.
이 성지는 화려한 건축보다 사라진 공동체의 자리를 기억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황무실에서는 평신도들이 함께 살며 신앙을 이어 갔고, 선교사들의 활동과 고아 돌봄 사업도 이루어졌다. 교우촌 자체는 박해로 무너졌지만 그 터는 내포 교회가 평신도 공동체, 선교사, 순교자들의 삶이 서로 얽혀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역사적 순례지가 되었다.
역사와 유래
황무실에는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1785년경부터 신자들이 거주한 것으로 대전교구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초기 신자로 전해지는 유군명 시메온은 입교한 뒤 자신의 종들을 해방시킨 인물로 소개된다. 공동체는 한때 약 100명의 신자가 함께 사는 교우촌으로 성장해 박해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황무실은 박해를 피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식처이자 사목 거점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영해회, 곧 성영회 계통의 고아 돌봄 사업도 일찍 시작되어 고아를 가정에 받아들이는 활동이 이루어졌다. 황무실에서 활동하던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는 각각 1857년과 1863년에 병으로 선종해 이곳에 묻혔다.
황무실의 첫 순교자로 기록된 이보현 프란치스코는 1800년 1월 9일 해미에서 순교했다. 공동체에서는 그 밖에도 홍주와 해미에서 순교한 이들이 나왔으며, 이보현 프란치스코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교우촌의 일상적인 신앙생활과 박해 속 증언이 한 역사 안에 함께 이어진 셈이다.
공동체는 1866년 병인박해로 붕괴된 뒤 이전 규모를 회복하지 못했다. 황무실에 묻혀 있던 메스트르와 랑드르 신부의 유해는 1970년 합덕 성당으로 이장되었고, 2003년 다시 대전가톨릭대학교 구내 대전교구 성직자 묘지로 옮겨졌다. 공동체는 사라졌지만 그 터와 관련 기록이 보존되면서 황무실은 내포 교우촌의 생활, 선교사 사목, 순교의 기억을 함께 전하는 성지로 남게 되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황무실성지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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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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