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 성당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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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공세리 성당은 천주교 대전교구 아산지구의 본당이면서 순교자를 현양하는 성지로 기능하는 곳이다. 대전교구는 이곳에 조선시대에 신앙을 증거한 32위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안내하며, 본당 공동체의 일상적인 전례와 성지를 찾는 순례자의 기도가 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장소로 소개한다.
성당은 인주면과 영인면 일부를 맡는 지역 본당이자, 내포 지역의 오래된 천주교 신앙을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성지 안에는 순교자들을 기리는 묘와 현양 시설, 옛 사제관을 활용한 박물관이 마련되어 있어 방문자는 본당의 현재 신앙생활과 박해 시대의 기억을 함께 접할 수 있다.
오랜 성당 건물과 주변의 보호수가 이루는 경관도 공세리의 시간성을 보여 주지만, 이 장소의 핵심은 지역 신자들의 본당 생활과 순교자 현양, 내포 천주교사의 기억이 한곳에 겹쳐 있다는 데 있다. 공세리 성당은 현재의 본당 공동체가 과거의 신앙 증언을 기억하고 순례자와 나누는 대전교구의 신앙·순례 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와 유래
공세리 본당의 역사는 1890년 예산 간양골에 마련된 본당에서 시작된다. 대전교구는 공세리를 합덕과 더불어 충청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된 본당으로 설명한다. 첫 터전은 간양골이었지만, 본당은 1895년 폐지된 공세창의 터를 매입해 현재의 공세리로 옮겼다. 당시 이 일대는 내포 지방의 바닷가 입구에서 해상과 육로를 연결하던 포구였고, ‘공세리’라는 지명도 세곡을 보관하던 공세창에서 유래하였다. 본당의 이동은 단순한 주소 변경이 아니라 지역의 교통과 생활이 모이던 옛 공간에 새로운 신앙 거점을 세우는 과정이었다.
이전 뒤 본당은 새 터에 정착하며 성당을 갖추어 갔다. 지금 남아 있는 벽돌 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가 설계해 1922년에 완공하였다. 근대 고딕식으로 지은 이 성당은 공세리 본당이 한 세대 이상 이어 온 선교와 사목의 기반을 가시적인 건축물로 남겼고, 이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등록되어 근대기 천주교 건축의 한 사례로 보존되고 있다.
공세리의 역사에는 건물만큼이나 순교자에 대한 기억이 중요하게 자리한다. 성지에는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신 납골식 묘와 현양탑이 조성되었고, 옛 사제관은 박해 시대 교우촌의 생활과 순교자들의 행적을 전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박물관에는 박씨 삼형제의 유해를 비롯해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본당이 보존해 온 순교 신앙의 기억을 방문자가 구체적으로 접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시설의 형성으로 공세리는 지역 본당이면서 순교자 현양과 교회사 교육을 함께 수행하는 성지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공세리의 역사는 간양골에서 출발한 본당이 공세창 터로 옮겨 정착하고, 근대 성당을 세운 뒤 순교자의 기억을 보존하는 공간으로 발전한 연속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오늘 남아 있는 성당과 사제관, 순교자 현양 시설은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이면서도, 내포 지역에서 이어진 신앙 공동체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보여 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공세리성지·성당 · 천주교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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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co Diary
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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