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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공주중동 성당은 천주교 대전교구 공주지구의 본당이자 공주 지역 천주교사의 중요한 흔적을 간직한 성당이다. 공주시 자료는 이곳을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소개한다. 오늘날에도 공주 구도심의 언덕 위에서 실제 본당 공동체가 미사와 성사를 이어 가고 있어, 역사적 장소와 현재의 전례 공동체라는 두 성격이 함께 살아 있다.

붉은 벽돌의 성당과 옛 사제관은 공주 근대사의 한 부분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성당의 종탑과 내부 공간에는 서양식 고딕 건축의 특징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방문자가 이곳에서 마주하는 의미는 건축 자체에만 있지 않다. 오랜 기간 같은 자리에서 이어진 사목과 신앙생활의 흔적이 건물과 공간에 함께 축적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성당에서는 멀지 않은 곳에 황새바위 순교성지가 있어 공주의 선교와 박해, 순교자 현양의 역사를 한 지역 안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공주중동 성당은 그러한 지역 교회사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면서도 현재 신자들의 본당 생활이 계속되는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

공식 출처

역사와 유래

공주중동 본당의 직접적인 출발점은 1897년 5월 8일이다. 가톨릭 성지 자료에 따르면 당시 공주 본당은 합덕 성당과 공세리 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고, 공주 읍내의 신자는 20명 안팎에 불과했다. 초대 주임 기낭 신부는 처음에는 요골 공소에 임시로 머물다가 국고개 언덕의 부지를 마련해 같은 해 6월 28일 옮겨 왔다. 이곳에 교당을 세우고 교리를 전하면서 공주 읍내에 본격적인 천주교 사목 거점이 형성되었다. 공주시 자료는 뒤이어 1898년 한옥 성당이 세워져 선교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성당은 최종철 마르코 신부가 서울 약현 성당을 참고해 직접 설계하고 1934년 공사를 시작하면서 모습을 갖추었다. 1936년 고딕식 종탑을 갖춘 라틴 십자형 성당과 사제관·수녀원 등이 완공되었고, 1937년 5월 12일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이 건물은 한옥 성당을 사용하던 시기를 지나 공주 본당이 근대적인 성당 건축을 갖추게 된 전환점을 보여 준다. 당시 함께 지은 시설 가운데 오늘날에는 성당과 사제관이 남아 본당 역사의 물적 흔적을 전한다.

본당의 성장에 따라 관할구역도 여러 차례 나뉘었다. 1968년 유구 본당이 분리되었고, 1982년 9월 공주교동 본당이 새로 분리되면서 기존 공주 본당은 ‘공주중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1999년에는 공주교동 본당과 함께 공주신관동 본당 신설에도 영역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분리는 공주 지역의 신자 공동체가 커지면서 오래된 공주 본당의 넓은 관할이 여러 지역 본당으로 세분되어 간 과정을 보여 준다.

1997년에는 본당 설립 100주년과 성당 건립 60주년을 기념해 성당을 가능한 한 원형에 가깝게 되돌리는 대규모 복원공사를 실시하고 「중동본당 100년사」를 펴냈다. 이어 성당과 사제관은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42호로 등록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공주중동 성당이 19세기 말의 작은 선교 거점에서 지역 본당들의 모체로 성장하고, 근대 성당과 사제관을 보존하는 역사적 장소로 이어져 온 흐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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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rancisco Diary

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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