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리 성당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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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언어
한국어
장소 소개
금사리 성당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에 자리한 천주교 대전교구 논산지구의 본당 성당이다. 한국 천주교 공식 주소록은 이 본당의 주보성인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로 기록한다. 현재의 본당 공동체가 사용하는 성당과 20세기 초에 세워진 옛 성당이 한 장소의 역사를 이루고 있어, 오늘의 전례와 신앙생활이 이어지는 공간에서 부여 지역 천주교의 오랜 뿌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옛 금사리 성당은 한국식 건축 요소와 서양식 성당 구조가 결합된 초기 천주교 건축의 모습을 간직하며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옛 성당과 사제관 등은 이 지역 신앙 공동체가 정착해 온 과정을 보여 주는 역사적 흔적이고, 그 곁의 현 성당은 지금도 본당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이어 간다. 따라서 금사리 성당은 보존된 근대 성당 건축을 보는 장소이면서, 과거의 신앙 유산이 현재의 본당 생활과 한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역사와 유래
부여 지역에는 금사리 본당이 세워지기 전부터 여러 공소가 형성되어 있었다. 지역 신자들과 사제들이 본당 설치를 요청하자 뮈텔 주교는 1900년 공베르 줄리앙 신부를 이 지역에 파견했고, 소양리가 중심지로 정해졌다. 이듬해인 1901년 4월 27일 공주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이 설정되었으며, 초기에는 홍산 성당 또는 소양리 성당이라는 이름도 사용되었다.
공베르 신부는 부지를 마련해 성당 건축을 추진했고 1906년 오늘날 옛 성당으로 불리는 건물을 완공했다. 이어 1913년 사제관과 사랑채가 완성되었으며, 같은 해 9월 2일 뮈텔 주교가 축성식을 거행했다. 옛 성당은 중앙의 열주로 회중석을 나누는 2랑식 평면과 한식·서양식 구조가 어우러진 특징을 지니며, 한국 천주교가 지역에 정착하던 시기의 성당 건축을 보여 준다.
한국전쟁 때에는 당시 주임이던 조제프 몰리마르 신부가 체포되어 1950년 대전에서 피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신자 증가에 대응해 1968년 옛 성당 옆에 새 성당을 완공하면서 전례 공간의 중심은 새 건물로 옮겨 갔고, 옛 성당은 본당의 역사를 증언하는 건물로 남았다.
1998년 옛 성당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0년대에는 복원 작업을 거쳐 보존되었다. 공소 시기의 신앙에서 출발해 본당 설정과 성당 건축, 전쟁의 상흔, 새 성당 건립과 문화유산 보존으로 이어진 금사리의 흐름은 한 지역 공동체가 세대를 거쳐 신앙의 자리를 지켜 온 과정을 보여 준다.
출처
- 현대사 현장 - 금사리 성당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아카이브
- 한국 천주교 주소록 - 금사리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부여 금사리성당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81위 시복 대상자 약전 - 조제프 몰리마르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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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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