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다락골성지는 천주교 대전교구가 소개하는 청양의 순례지로,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그의 아버지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탄생지에 얽힌 신앙 기억, 그리고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순교자·증거자들의 줄무덤을 함께 품고 있다. 한 장소에서 사제 성소의 뿌리와 박해 속 신앙 증언을 나란히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성지의 가장 뚜렷한 성격이다.
성지 안에서는 최양업 신부 생가터와 줄무덤을 이어 걸으며 신앙 선조들의 삶을 되새길 수 있다. 대전교구는 화성면 일대에서 생가터를 거쳐 줄무덤까지 이어지는 도보 순례 구간도 안내하고 있다. 다락골은 화려한 기념물보다 교우촌의 자리와 무덤, 산길 자체가 역사적 증언을 전하는 곳으로, 한국 천주교의 박해사와 사제 성소의 역사를 함께 묵상하는 순례 공간이다.
역사와 유래
다락골의 신앙공동체 형성은 1791년 신해박해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전교구 자료에 따르면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 최인주가 어머니 경성이씨를 모시고 이곳으로 피난해 오면서 산골 마을이 교우촌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공동체에서 훗날 한국의 두 번째 사제가 되는 최양업 토마스와 그의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태어났다. 최경환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다락골에 머물렀다. 먼저 체포된 앵베르 주교가 교우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두 선교사에게 자수하도록 편지를 보내자, 이들은 그 뜻에 순명해 떠나기 전 이곳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다. 이 사건은 다락골이 한 가족의 신앙사만이 아니라 박해기 조선 교회와 선교사들의 활동에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성지의 줄무덤은 1866년 병인박해 때 홍주와 공주에서 신앙을 지키다 죽은 교우들의 무덤이다. 대전교구는 세 구역에 모두 37기가 남아 있으며 본래는 40기였다고 설명한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순교자와 증거자들이 함께 묻힌 이 무덤들은 개인의 이름보다 공동체 전체의 신앙 증언을 기억하게 한다.
이처럼 다락골은 박해를 피해 형성된 교우촌, 사제와 성인의 가정사, 선교사들의 마지막 미사, 병인박해 희생자들의 무덤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곳이다. 오늘의 성지는 이 서로 다른 기억을 보존하면서 내포와 충청 지역의 천주교 박해사를 구체적인 장소와 인물의 삶으로 이어 주고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다락골성지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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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0대
- 지상 2층 · 지하 0층
- 2008년 사용승인
- 연면적 2,541㎡
건축물대장 조회값 ·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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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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