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드리성지
성지
장소 소개
배나드리성지는 천주교 대전교구가 안내하는 내포 지역의 순교 신앙 유적지로,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에 자리하며 삽교 본당이 관할한다. ‘배나드리’라는 이름은 삽교천에 밀물이 들어오면 마을 주변에 물이 차 배를 타고 드나들어야 했던 지형에서 비롯되었다. 물길과 들판이 둘러싼 환경은 박해 시대 신자들이 비교적 숨어 지내며 공동체를 이루기에 알맞은 조건이 되었다.
이 성지는 특정한 대형 성당이나 순교 형장보다, 초기 내포 교우촌의 삶과 이 지역 출신 순교자들의 기억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곳이다. 특히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와 19세기 초 배나드리에서 체포되어 신앙을 지킨 이들을 기념한다. 오늘날의 성지는 폐쇄된 옛 용머리 공소터를 바탕으로 조성되어, 지역 신앙 공동체의 흔적과 순교자들의 증언을 조용히 되새기는 순례 장소가 되었다.
역사와 유래
배나드리는 삽교천 하구의 지형을 이용해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초기 내포 교우촌 가운데 하나다. 대전교구 성지 자료는 삽교천에 밀물이 들면 마을이 섬처럼 고립되어 배를 타야 했던 데서 이름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천주교가 내포에 전해진 뒤 삽교와 덕산 일대에도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지형은 박해를 피해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데 일정한 도움을 주었다.
1816년 경상도 박해의 여파는 이듬해 배나드리까지 미쳤다. 1817년 10월 이곳에서 약 20~30명의 신자들이 체포되었고, 민첨지 베드로와 형수 안나, 송첨지 요셉, 손연욱 요셉, 민숙간 등 여러 신자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옥중에서 순교한 것으로 대전교구는 전한다. 손연욱의 부친 손여심은 해미 옥에서 오랜 수감 생활을 한 뒤 1827년 순교하였다.
배나드리 인근의 대표적인 순교자는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다. 그는 1737년 덕산 주래, 오늘날 삽교읍 용동리 일대에서 태어나 황사영 알렉시오를 통해 신앙을 접하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797년 체포되어 공주와 청주를 거쳐 해미로 이송된 뒤 1800년 1월 9일 순교했으며,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근대의 성지는 옛 용머리 공소의 역사와도 이어진다. 용머리 공소가 1987년 폐쇄된 뒤 그 터에 배나드리성지가 마련되었고, 1991년부터 삽교 지역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성지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박해 시대 교우촌의 생활터가 사라진 공동체의 흔적에 머물지 않고, 지역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순례 공간으로 새롭게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배나드리성지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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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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