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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신암 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속한 본당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 자리한다.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이다. 대구 도심 동쪽의 오래된 신앙 공동체를 이어 온 본당으로서, 지역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거행하고 교리교육과 공동체 생활을 이어 가는 중심 역할을 한다.

신암 본당은 오랜 기간 주변 지역의 본당들이 새로 생겨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관할 구역이 조정되었지만, 신암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공동체의 신앙 기반을 계속 지켜 왔다. 특히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는 정체성은 전례와 기도 생활의 한 축을 이루며, 도심 생활권 안에서 세대를 이어 신앙을 전하는 본당의 성격을 드러낸다.

본당을 찾는 이에게 신암 성당의 의미는 현재의 성당 건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랜 공소 공동체에서 시작해 주변 여러 본당의 모체 역할을 해 온 기억이 오늘의 지역 본당 안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깊이는 현재 신암동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미사와 성사, 신앙교육을 더욱 긴 지역 교회사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공식 출처

역사와 유래

신암 지역의 천주교 공동체는 본당 설립보다 수십 년 앞서 형성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887년 통계에서 이 일대의 동상 공소에 신자 약 30명이 있었고, 김상연의 집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모였다고 기록한다. 신자 수가 늘자 1904년 공소를 신기리로 옮겼으며, 이후에도 대구 동부 지역 신앙 공동체의 거점 역할을 이어 갔다.

1923년에는 약 30평 규모의 공소 강당을 마련해 드망즈 주교의 축복을 받았다. 1933년에는 강당을 고치고 종탑을 세우는 한편 준본당으로 승격되어, 보좌 신부가 정기적으로 머물며 사목하는 체제가 갖추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가정 중심의 공소 공동체가 상설 사목 거점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신암은 1945년 12월 20일 정식 본당이 되었다. 1949년 새 성당 건축에 착수했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전쟁 중인 1951년에 성당을 완공했다. 이후 1960년 유치원을 열었고, 1965년에는 유치원·교리실·도서관·야학 등을 수용하는 3층 회관을 세워 전례 밖의 교육과 지역 활동도 넓혀 갔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1977년 대현·효목 본당, 1981년 큰고개 본당 등이 분리되어 나갔다. 본당 자체도 늘어난 신자와 사목 수요에 맞추어 1989년 10월 새 성당을 건립하고, 1992년 수녀원을 새로 마련했다. 이렇게 신암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의 작은 공소에서 시작해 대구 동부의 여러 본당을 낳은 도시 본당으로 성장해 온 흐름을 보여 준다. 1900년 무렵에는 신자가 약 100명으로 늘었다는 기록도 있어, 20세기 초 이전부터 공동체가 꾸준히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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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co Diary

교구

대구대교구 (Archdiocese of Daegu)

공식 홈페이지: http://www.daegu-archdioce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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