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성 유스티노 신학교는 대구대교구의 초기 사제 양성 역사를 간직한 옛 신학교 건물이자, 현재 교구가 지정한 순례지이다.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사제 양성을 교구의 핵심 과제로 삼아 세운 신학교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오늘날에는 원래 건물 가운데 중심 부분이 보존되어 있다.

보존 건물에는 옛 성당 공간과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역사를 소개하는 역사관이 마련되어 있어, 방문자는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니라 한국 남부 지역의 성직자 양성과 교구 성장의 출발점을 살펴볼 수 있다. 붉은 벽돌과 연속 아치 등 당시 건축의 특징도 남아 있어, 신앙사와 교육사, 근대 건축의 층위가 함께 읽히는 장소이다. 대구 교회의 사제 양성이 어떤 환경에서 시작되고 이어졌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순례 공간이다.

역사와 유래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는 새 교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사제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보았다. 신학교 설립에는 큰 재정 부담이 있었지만, 중국 상하이의 한 신자가 거액을 희사하면서 ‘유스티노 성인’을 주보로 모실 것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1914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신학교는 대구뿐 아니라 삼남 지방의 사목을 담당할 성직자를 양성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1945년 3월 19일 문을 닫았고, 폐교 때까지 모두 67명의 사제를 배출했다. 신학교가 사라진 뒤에도 이곳이 남긴 사제 양성의 전통은 교구 역사에서 중요한 기반으로 남았다.

약 40년 뒤인 1982년 ‘선목신학대학’으로 사제 양성 교육이 다시 시작되면서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정신적 계보가 이어졌다. 옛 신학교 건물은 붉은 벽돌의 2층 건물로 세워졌고, 명동성당 건축에도 참여했던 프와넬 신부가 설계한 것으로 교구 자료는 전한다. 중국인 기술자들이 공사에 참여했으며, 중앙 성당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1층 전면에는 로마네스크식 연속 아치 복도가 마련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전면의 양 날개 부분은 철거되었고 지금은 중심부가 남아 있다. 보존된 옛 성당과 양쪽의 역사 전시 공간은 신학교의 기억을 현재로 이어 준다. 이 장소는 일제강점기의 교회 교육, 사제 양성의 단절과 재개, 그리고 남아 있는 근대 건축을 한자리에서 보여 주며 대구대교구의 성직자 양성 역사를 증언한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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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정보
  • 승용 엘리베이터 1대
  • 지상 5층 · 지하 1층
  • 연면적 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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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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