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관아와 옥 터

성지

장소 소개

경주 관아와 옥 터는 대구대교구가 성건성당과 연결하여 안내하는 순교 사적지이다.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사학 죄인’으로 몰려 관아에 끌려와 문초와 형벌을 받았던 현장으로, 경주 지역의 박해사와 신앙 증언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다. 오늘날 순례자는 성당 건물 자체보다 관아와 감옥이라는 역사적 공간이 지닌 의미를 중심으로 이곳을 이해하게 된다.

이 사적지는 박해기에 신앙 때문에 고초를 겪은 이들의 흔적을 지역의 교회사 속에서 되새기게 한다. 대구대교구가 성건성당 관할 아래 이 장소를 소개하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의 성지순례 체계에서도 순교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겪은 장소를 기억하는 순교 사적지로 다루어진다. 경주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길에서 천주교 박해사의 한 장면을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신앙 유산이다.

역사와 유래

1815년 을해박해 때 경주 관아와 옥에서는 고성운 요셉, 고성대 베드로, 구성열 바르바라, 최봉한 프란치스코, 서석봉 안드레아,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 안치룡 등을 포함한 40여 명의 신자가 고초를 겪었다고 대구대교구는 전한다. 이 기록은 경주가 단순한 체포 경유지가 아니라 신자들이 관장 앞에서 신앙을 추궁받고 형벌을 받은 박해 현장이었음을 보여 준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따르면 1860년 경신박해 때에도 10명의 신자가 경주 감옥에 갇혀 문초와 옥고를 겪었다. 이어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가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하기 전에 이곳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으며 천주교 신앙을 드러냈다. 서로 다른 박해 시기에 같은 관아와 옥이 반복해서 신자들을 심문하고 처벌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이 사적지의 역사적 무게를 더한다.

2014년 124위 시복을 기념하여 경주 읍성의 감옥 터에 비석이 세워졌고, 이 표지는 현재 성건성당 관할 안에서 박해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옛 관아와 감옥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증언한 이들의 기록과 기념 표지를 통해 경주 지역 천주교 박해사는 오늘의 순례와 현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경주 관아와 옥 터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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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http://www.daegu-archdioce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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