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봉암 성지
성지
장소 소개
음성 봉암 성지는 청주교구가 공식 성지로 관리하는 곳으로, 맹동본당 관할 아래 봉암 공소와 방축골·계마대 교우촌의 신앙 기억을 함께 간직한 순례지이다.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의 흔적과, 그 공동체에서 이어진 순교 신앙을 한 장소의 역사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성지의 중요한 특징이다.
봉암 성지는 특정한 순교 장소나 묘소 한 곳만을 기념하기보다, 신자들이 함께 살고 기도하며 신앙을 지켰던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옛 교우촌의 기억이 봉암 공소를 거쳐 오늘의 성지로 이어지면서, 순례자는 박해 속에서도 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을 전해 온 한국 천주교회의 모습을 묵상할 수 있다.
오늘날 이곳은 옛 교우촌의 기억과 순교 신앙을 보존하고 전하는 청주교구의 성지로서, 지역 신앙사의 뿌리를 현재의 순례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와 유래
봉암의 방축골과 계마대에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이 모여 교우촌을 이루었다. 청주교구의 성지 약사에는 김백심 암브로시오와 송군명 바오로, 김경장, 이 베드로 가족이 방축골에 살았고, 뒤이어 충주 광벌에 있던 민윤명 프란치스코 회장 가족이 계마대로 옮겨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공동체는 외부의 눈을 피해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도 사목 순방 중 이곳을 찾아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다. 그는 김백심의 막내아들 사도 요한을 신학생으로 선발해 배티의 조선대목구 신학교로 보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 때 방축골과 계마대 공동체가 발각되면서 김백심과 김성서 파비아노, 민윤명 프란치스코, 이 베드로가 차례로 순교했고, 1868년에는 김성회 바오로와 사도 요한도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했다.
박해로 교우촌이 흩어진 뒤 1892년 정무선 요셉이 봉암 마을로 이주해 다시 신앙 공동체를 꾸렸고, 1897년 봉암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 공소는 옛 교우촌의 기억을 이어 주는 구체적인 공동체의 터전이 되었다.
청주교구는 이러한 역사와 순교 신앙을 기리기 위해 2020년 11월 29일 봉암을 성지로 선포했다. 성지의 형성은 19세기 교우촌의 삶과 박해, 공소 공동체의 재건이 현대의 순례 기억으로 이어진 과정이며, 민윤명 프란치스코의 시복 추진도 이 장소의 교회사적 의미를 오늘까지 잇고 있다.
오늘의 미사
오늘 남은 미사가 없습니다.
미사 언어
미사 언어 정보 없음
주간 미사 일정
일요일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음성 봉암 성지의 첫 기록
아직 공개된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문서가 없습니다. 확인 가능한 출처와 함께 이 천주교 장소의 역사와 이야기를 기록해 보세요.
사진
아직 사진이 없습니다.
정보 상세
- 정보 상태
- 공식 정보
- 출처
- 공식 출처
- 정보 최신성
- 최신
- 최종 업데이트
- 합의
- 미확인
- 커뮤니티 확인 수
- 0
- 출처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교구
청주교구 (Diocese of Cheongju)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dcj.or.kr
정보 확인에 참여
미사 시간이나 성당 정보가 달라졌나요?
현재 표시된 정보를 확인했거나 다른 점을 발견하셨다면 알려주세요.
정보 상태: 공식 출처
로그인 후 일정 확인 또는 변경 제보를 할 수 있습니다.
제보는 먼저 검토 대기 상태로 저장됩니다. 같은 변경을 서로 다른 3명이 제보하면 자동 반영될 수 있으며, 공식 출처 링크는 운영자 확인에 활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