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소개
조씨 형제 순교자 묘는 천주교 부산교구가 신앙 사적지로 안내하는 곳으로, 조석빈과 조석증 형제의 무덤이 자리한 장소다. 두 형제는 조선 후기 박해 속에서도 천주교 신앙을 지키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한 평신도 순교자로 전해지며, 이 묘는 부산·김해 일대 초기 신앙 공동체가 겪은 박해와 신앙 증언을 기억하게 하는 현장이다.
이곳의 의미는 화려한 성당이나 대규모 순례 시설에 있지 않고, 박해로 가족에게조차 장례를 받기 어려웠던 이들을 한 이웃이 거두어 묻고 그 후손들이 오랫동안 묘를 지켜 온 기억에 있다. 부산교구는 구전으로 이어진 이야기를 교회 차원에서 확인해 순교자 묘로 전하고 있다. 방문자는 이곳에서 순교 자체뿐 아니라 박해받은 신자를 돌본 이웃의 용기, 그리고 이름 없는 신앙의 기억을 여러 세대가 보존해 온 의미를 함께 묵상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주소록도 이곳을 일반 묘지가 아니라 부산교구의 성지·사적지 범주로 별도 등재하고 있다. 따라서 조씨 형제 순교자 묘는 개인 가문의 묘역을 넘어 교회가 지역 순교 신앙의 기억을 보존하고 순례자들에게 전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와 유래
부산교구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조석빈과 조석증 형제는 김해 지역의 창녕 조씨 양반 가문 출신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신앙을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문 성경을 유교 경전 사이에 감추어 읽고, 특히 주변 양반층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고 전해진다.
1868년 무진박해가 일어나자 두 형제는 체포되어 동래 관아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배교를 거부했고, 끝내 참수되어 순교한 것으로 부산교구는 전한다. 당시에는 천주교 신자를 ‘사학죄인’으로 보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족도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기 어려웠다.
이때 이웃 배정문이 형제의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집 뒤에 묻었다. 이후 배씨 집안은 네 대에 걸쳐 묘를 돌보며 그 사연을 전했고, 현재의 묘도 그 집안의 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소개된다. 교회는 오랫동안 구전으로 이어진 이 기억을 확인해 조씨 형제 순교자 묘로 전하고 있다.
조씨 형제의 역사는 박해 시대의 순교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신앙 때문에 가족과 사회에서 배척받은 이들을 이웃이 장례 지내고, 그 후손들이 묘를 지켜 기억을 전했다는 점에서 순교자의 증언과 함께 평신도 사이의 연대와 기억의 계승을 보여 준다. 오늘의 사적지는 바로 그 두 층위의 역사를 함께 보존하는 장소다. 특히 이 묘의 보존 과정은 공식 문서만으로 남기 어려운 박해 시대 평신도의 기억이 구전과 가족의 돌봄을 통해 전해진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교회가 그 전승을 확인하고 사적지로 안내하게 된 과정은 지역 교회사가 기록 문헌뿐 아니라 장소와 공동체의 기억을 통해서도 계승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조씨 형제 순교자 묘의 역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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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부산교구 (Diocese of Busa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atholicbus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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