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제 묘

성지

장소 소개

김영제 묘는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살티 신앙사적지에 있는 부산교구 성지·사적지로, 병인박해 전후의 지역 교우촌을 이끌었던 김영제 베드로(1827~1876)를 기억하는 묘소다. 부산교구 성지 목록은 이곳을 여동생 김 아가다의 묘와 함께 소개하며, 같은 주소의 살티 신앙사적지와 연계된 순례 장소로 안내한다. 김영제가 박해를 겪은 뒤 살티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이곳에서 생을 마친 사실 때문에, 묘는 언양 지역 박해사와 공소 신앙을 이해하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

현재의 묘역에는 김영제와 김 아가다 남매의 묘가 나란히 있고, 십자가와 제대, 순교비와 성지 표지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곳은 개인 묘소에 머물기보다, 한 가족이 물려받은 신앙과 박해로 흩어진 교우촌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되찾아 보존한 후대 교회의 노력을 함께 돌아보는 순례 공간이다. 살티 공소와 연결해 방문하면 박해를 피해 산골에 형성된 신앙공동체의 역사적 맥락을 더욱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역사와 유래

김영제 베드로는 집안에서 이어진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박해기 언양 일대 교우촌의 형성에 참여했다. 굿뉴스 자료에 따르면 간월로 돌아온 뒤 다블뤼 안토니오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맞이했고, 공소를 세운 뒤 1858년에는 공소 건물을 지었다. 당시 간월 일대에는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모여 교우촌을 이루고 있었다.

1860년 경신박해 때 김영제는 부친과 여동생 김 아가다 등 여러 신자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대구를 거쳐 한양까지 압송되었다가 풀려났지만, 1868년 다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대구 감영에서 전교 신부들의 행방을 대라는 문초를 받는 과정에서 무릎뼈가 크게 상했고, 1869년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 뒤 피신한 가족들을 찾아 안살티에 정착했다.

김영제는 안살티에서 다시 공소를 세우고 회장 역할을 맡았으며, 박해가 잦아든 뒤에는 농사지을 수 있는 평지를 찾아 현재의 살티로 옮겨 살았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은 계속 악화되었고, 1876년 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굿뉴스 자료는 이처럼 고문의 상처가 원인이 되어 뒤에 죽음에 이른 경우를 ‘장하 순교’로 설명하며 김영제를 순교자로 기억한다.

그의 묘는 1981년 11월 언양성당 신자들이 정비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1994년 4월 2일 부산교회사연구소 주관으로 현재 위치로 유해를 이장하고 분묘와 순교비, 십자가와 제대 등을 새로 조성했다. 2008년에는 여동생 김 아가다의 묘도 곁으로 옮겨 남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김영제의 묘는 개인의 장례 장소에서 박해기 언양 공동체의 신앙을 기억하는 순례 묘역으로 발전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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