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옥터 순교성지

성지

장소 소개

상주 옥터 순교성지는 천주교 안동교구가 지정한 순교성지로,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는 남성동본당 관할의 성지로 등록되어 있다. 옛 상주 관아의 감옥이 있던 자리로 전해지며, 조선 후기 박해 때 경상도 북서부 여러 교우촌에서 붙잡힌 신자들이 갇혀 신앙을 증언했던 기억을 간직한다.

오늘 이곳의 의미는 순교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옥에 갇혔다가 상주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어 순교한 신앙 선조들의 흔적을 한 장소에서 기억하고 기도하게 한다는 데 있다. 안동교구는 이를 교구의 공식 성지로 관리하며, 상주 지역의 박해사와 순교 신심을 연결하는 순례 장소로 보존하고 있다. 성지는 특정한 성당 건축을 감상하는 곳이라기보다, 감옥이라는 장소의 기억을 통해 박해받은 신자들의 선택을 묵상하는 곳에 가깝다. 상주에서 바로 순교한 이들과 다른 도시로 압송된 이들의 길이 이곳에서 교차했기 때문에, 옥터는 여러 순교지와 교우촌을 연결하는 기억의 관문 역할을 한다. 이 점이 다른 순교자 묘역형 성지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역사와 유래

상주 옥터는 조선시대 상주 관아의 감옥 자리로 전해진다. 안동교구 성지 안내는 경상감영이 상주에 있던 1408년 무렵 옥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하며, 이후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기에는 경상도 북서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이곳에 수감되었다고 설명한다. 상주는 여러 교우촌과 관아를 잇는 박해의 행정 공간 가운데 하나였다.

1827년 정해박해 때는 잣골·멍에목·앵무당 등지의 신자들이 잡혀 왔고,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한실·여우목을 비롯한 지역 신자들이 이곳을 거쳤다. 일부는 상주에서 처형되었고, 일부는 대구나 전주로 이송되어 순교했다. 당시에는 정식 재판 절차보다 먼저 사형을 집행하는 ‘선참후계’ 방식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있었다고 교구 자료는 전한다.

옥터와 관련된 순교자 가운데 신태보 베드로와 최조이 바르바라는 전주로, 박경화 바오로·박사의 안드레아·김사건 안드레아·이윤일 사도 요한은 대구로 이송된 뒤 순교했다. 이 여섯 명은 2014년 8월 16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시복 미사에서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복자품에 올랐다.

안동교구는 같은 해 8월 24일 상주 옥터를 교구 순교성지로 선포하고 축복식을 거행했다. 이로써 과거에는 억압과 수감의 공간이었던 옥터가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장소로 전환되었다. 오늘의 성지는 19세기 박해의 현장과 21세기의 순교자 현양을 직접 이어 주는 역사적 표지가 되었다. 2014년의 성지 지정은 같은 달 이루어진 시복과 맞물려 옥터의 의미를 새롭게 정리한 사건이었다. 관련 순교자들이 복자로 공적으로 선포된 뒤, 교구는 그들이 수감되고 이동했던 상주의 장소를 공식 순례 공간으로 정비했다. 이 순서는 옥터가 단순한 옛 관아 유적이 아니라, 문헌 속 순교자들의 행적을 오늘의 장소 기억과 연결하기 위해 성지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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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교구

안동교구 (Diocese of Andong)

공식 홈페이지: http://www.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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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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