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루산 교우촌
성지
장소 소개
머루산 교우촌은 천주교 안동교구가 순교 신앙의 기억을 간직한 장소로 안내하는 박해 시대 교우촌 유적이다.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 깊은 산지에 형성되었던 공동체의 터로, 오늘날에는 상주하는 본당이나 공소라기보다 박해를 피해 산중으로 들어가 신앙을 지킨 교우들의 삶을 기억하는 순례 장소에 가깝다.
가톨릭 성지 자료는 이곳을 태백산맥 줄기의 포도산 꼭대기에 세워진 교우촌으로 소개한다. 머루산의 의미는 큰 성당 건축보다 외부의 눈을 피해 살아야 했던 초기 교우들의 생활 터 자체에 있다. 깊은 산중에서 생업과 기도를 함께 이어 간 공동체의 흔적을 통해, 방문자는 박해 시대 평신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삶의 조건과 공동체적 연대를 구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
역사와 유래
머루산 교우촌의 형성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난 신자들이 영남 북부의 산간으로 들어오던 흐름과 이어진다. 충청도 등지에서 이주한 교우들은 외부의 눈을 피하기 쉬운 깊은 산지에 모여 살며 신앙을 지켰고, 진보 머루산도 그러한 교우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곳에서 교우들은 생업을 이어 가면서 함께 교리를 익히고 신앙생활을 유지했다.
1815년 을해박해가 경상도 북부를 휩쓸면서 포졸들이 머루산을 덮쳐 신자들을 체포해 안동으로 압송했다. 이때 머루산에서 살던 김시우 알렉시오는 신앙을 숨기지 않고 체포되었고, 대구로 이송된 뒤 형벌과 옥고 끝에 1816년 무렵 옥사했다. 이시임 안나 역시 머루산에서 아들과 함께 살다가 체포되어 안동을 거쳐 대구로 보내졌으며, 오랜 옥고와 형벌에도 신앙을 지킨 끝에 1816년 12월 19일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했다.
을해박해로 머루산 교우촌은 사실상 해체되었고 남은 신자들도 흩어졌다. 그러나 공동체의 터와 이곳에서 살았던 순교자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시우 알렉시오와 이시임 안나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머루산은 오늘날 그들의 삶과 박해 시대 산간 교우촌의 신앙을 함께 기억하는 장소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머루산 교우촌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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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안동교구 (Diocese of Andong)
공식 홈페이지: http://www.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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